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 '양심적 병역거부' 첫 무죄…14년 만에 판례 뒤집어
14년 만에 판례가 뒤집어지면서 대법원에 대기 중인 200여 건의 유사 사건에도 줄줄이 무죄가 선고되는 한편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오승헌 씨(34)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병역법 제88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현역 입영이나 예비군 소집 등에 불응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1968년 “종교인의 양심적 결정에 의한 군 복무 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확립된 이래로 대법원은 그동안 종교적인 이유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실형을 선고해 왔다.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수인 9명의 대법관은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며 “양심적 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것은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이며 △병역의무 형평성에 어긋나고 △양심을 형사 절차를 통해 증명할 수 없고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로 인정되면서 비슷한 사건에 줄줄이 무죄가 선고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모두 227건이며 전국 법원에서 재판 중인 피고인들은 989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이거나 형기를 마친 경우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의 효력이 소급 적용되지 않지만 일각에선 정부 차원의 특별 사면도 거론되고 있다.

국방부가 마련 중인 대체복무제 시행 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병무청 등 관계기관과 논의를 거친 국방부는 현역병 복무 기간인 18개월의 두 배인 36개월 동안 소방서와 교도소 등에서 합숙 형태로 대체복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무청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때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입영을 연기하기로 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