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 '脫원전·노무현 일가 수사' 속도 낼까
사실상 방치되고 있던 탈원전 위법성 고발사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 수수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수사가 이번 국정감사를 계기로 속도를 낼 조짐이다. 이번 국감에선 검찰이 입맛에 따라 수사 대상을 고르면서 현 정부가 불편해하는 두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뭉개기’를 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의원들의 지적에 따라 사건을 배당해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마무리된 법무부 검찰 국감에서 탈원전 위법성 고발사건에 대한 재배당과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 의원은 “동일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 7부와 8부, 대전지검에 따로 배당한 것은 수사의 김을 빼려는 의도”라며 “관할권 있다 없다로 지검간 ‘핑퐁게임’하게 하면서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발한 지 9개월이 지났는데도 참고인 조사도 안 할 정도로 수사 의지가 없다”고 질책했다.

한국당은 2017년 7월 정부의 갑작스러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 지난 1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배임죄 및 강요죄), 이관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업무상 배임죄)을 각각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중단 과정에서 원자력안전법, 에너지법, 국무회의 규정 등을 어겼고 1351억원의 손실을 안겼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8부에 배당됐다. 지난 6월 월성 1호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선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과 한국당의 고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검찰은 한변 고발 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 7부에, 한국당 고발 건은 대전지검에 따로 배당했다. 백 전 장관이 세종시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대전지검에 배당했지만 배당 당시 그는 퇴임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논란이 컸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한꺼번에 조사할 필요성이 있으면 병합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지지부진 '脫원전·노무현 일가 수사' 속도 낼까
사건 발생 10년, 고발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고발인 조사도 진행되지 않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달러 수수 사건도 이번 국감에서 논란이 됐다. 검찰은 2007년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딸인 노정연 씨가 140만달러, 2008년 노 전 대통령 아들인 노건호 씨와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500만달러를 각각 수수했다는 단서를 포착했다. 노 전 대통령도 당시 수수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수사가 중단됐고, 한국당은 2017년 10월 검찰에 다시 고발했다.

주광덕 한국당 의원은 “일부(권 여사와 노정연 씨 수수사건)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며 “담당 검사가 처리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의원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노건호 씨와 연씨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사업투자 명목으로 500만달러를 받은 사건의 공소시효가 2023년 2월까지임을 확인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사진)도 주 의원의 지적에 따라 특수부 배당을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국감에선 지난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 등에서 검찰의 부실 수사가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 의원은 검찰이 적폐 수사에 치중하면서 민생사건 처리가 늦어져 미제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기준 서울중앙지검과 재경지검(서울동부·남부·북부·서부지검) 등 5개 검찰청의 월말 미제사건은 2만1309건으로 올 1월(1만7767건)에 비해 3500여 건 늘었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가 ‘정치보복’이 아니라면, 좌우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사건을 엄벌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검찰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대부분 구속했고, 이명박 정부 출신도 100여명을 압수수색하고 소환했다"며 "잔인한 정치보복"이라고 평가했다. 또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증오를 검찰이 만들고 있다"고 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구를 구속시켰다’며 적폐수사를 자랑하는 것이 검찰이 나아갈 방향은 아니다”라며 “검찰이 권한을 내려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