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동시에 추진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 등 국가 공기업에서도 친·인척 채용이 만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19일 서울교통공사 등 공기업 전반의 고용비리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공공기관 채용실태 전수조사’를 하자는 이들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정규직 약속받은 인천공항 협력업체도 '고용 세습'
공기업 협력업체까지 고용세습 논란

이날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인천공항 협력사의 채용비리 의혹을 두고 질타가 쏟아졌다. 박완수 한국당 의원은 “인천공항이 지난해 5월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한 뒤 협력업체 6곳에서 총 14건의 친·인척 채용 비리가 확인됐다”며 “한 보안업체 간부는 지난해 8월 조카 4명을 비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했다”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합의한 공사 직고용 대상자 2940명이 원칙 없이 선정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채용비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그는 “협력사 채용비리 센터에 94건이 접수됐고 이 중 의심 사례 두 건은 검찰에 고발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 받았다”며 “정규직 전환 발표 후 입사한 협력업체 직원을 전수조사해 채용비리가 발견되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한국국토정보공사 국정감사에서도 친·인척 고용세습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당 의원들에 따르면 국토정보공사는 올 5월 비정규직 22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고 그중 19명이 직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함진규 한국당 의원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을 미리 알고 친·인척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비리 복마전 된 공기업 채용

고용세습 논란의 진원지인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업무방해 폭력 등 혐의로 해고된 직원 30여 명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를 도운 공로로 대거 복직했다는 의혹이 새로 제기됐다. 유민봉 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해고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30여 명은 박 시장의 2011년 말 재보궐선거 당선 직후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교통공사의 전신인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로 복직했다. 이 가운데 대법원에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확정판결을 받은 이도 상당수였다.

지난 3월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한 통합진보당 출신 임모씨가 사규를 위반했지만 회사 측이 징계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유 의원에 따르면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홍보부장으로 일했던 임씨는 지난해 11월께부터 12월31일까지 서울시청 광장에서 불법농성을 벌였다. 당시 임씨의 농성은 근무시간 내 행위로 무단이탈 등에 해당해 징계 대상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징계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교통공사와 국토정보공사 등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공기업 전수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 자행되는 고용세습의 뿌리깊은 관행을 근절하겠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도 “공기업의 고용비리 실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 역시 국정조사 압박에 가세했다.

‘채용비위 상시 감사’ 도입되나

지방공기업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법 개정 작업도 빨라질 전망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엔 지방공기업 임직원이 채용비위로 유죄 확정될 경우 채용된 자를 해고시키고, 관련된 임직원의 인적사항과 비위 행위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지방공기업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방공기업 채용 및 인사운영 실태에 대한 ‘수시 인사 감사’를 자치단체를 통해 하도록 하는 조항과, 채용비위가 발생할 경우 공사 임직원에 대한 수사 의뢰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연내 법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시행한 관계부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에선 659개 지방공기업 등에서 1488건의 비위가 적발됐지만, 909건은 주의 경고 등 가장 낮은 징계에 그쳤고 수사 의뢰된 건은 26건에 불과했다.

이해성/하헌형/양길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