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2015년 12월 회사 화장실 앞에서 다른 부서의 B씨와 부딪혔다. 복도에서 급하게 뛰어가던 B씨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A씨를 보지 못했던 탓이다. 이 사고로 B씨는 팔이 부러졌다. A씨가 B씨에게 엑스레이 촬영비 등 병원비 15만원을 주기로 합의하면서 사고는 마무리된 듯했다.

이달 초 A씨는 사고 3년 만에 근로복지공단에서 황당한 청구서를 받았다. ‘당신의 과실로 B씨에게 산재보험 급여를 지급했으니 손해배상금 250만원을 내라’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B씨가 뒤늦게 산재보험을 신청해 550여만원의 보험료를 받은 것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중 250만원을 사고 원인을 제공한 A씨에게 청구했다. A씨는 “이미 3년 전 합의했고 심지어 B씨의 과실이 컸던 사고인데 이제 와서 몇백만원을 물어내라니 황당하다”고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가 근무 중 질병 상해 사망 등을 겪으면 산재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보험금은 대체로 산재보험 기금에서 나가지만 가해자가 따로 있으면 추후 구상권을 행사한다. 예컨대 경비원을 술에 취한 C씨가 폭행한 경우 상해를 입은 경비원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한 뒤 근로복지공단이 C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식이다.

문제는 산재보험 승인 건수가 연평균 9만여 건인데 산재보상 시스템이 매우 허술하다는 것이다. A씨 사례도 마찬가지다. 절차상 B씨에게 산재보험금을 지급하기 전 A씨에게 통보한 뒤 과실과 형사 합의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다. 한 보험 전문가는 “근로복지공단이 사고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구상권을 청구해 소송까지 가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올해(7월 말 기준) 구상결정 건수는 2389건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