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2일 서울 방배동 인근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서울 방배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수사관들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을 서성이는 문모씨(45)를 발견했다. 문씨는 10분 넘게 여러 은행의 ATM에서 거액의 돈을 반복적으로 인출했다. 문씨가 이날 인출한 금액은 3600만원에 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수사관들은 문씨를 전화금융사기 인출책으로 보고 불심 검문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가 인출한 돈은 모두 도박사이트 범죄수익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돈을 인출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포통장 사용 내역과 휴대폰 메신저 대화 내용이 확인돼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며 “문씨를 시작으로 공범들을 차례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백억원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문씨와 박모씨(45)를 도박공간개설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대포통장 모집책, 도박 참여자 등 25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올 8월까지 도박 사이트 일명 ‘강남 바둑이’를 통해 회원 2000여 명을 상대로 도박 판돈 610억원을 받아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100여 개 대포통장을 이용해 도박 참여자에게 환전수수료의 10%와 베팅액의 1%를 챙겨 15개월 동안 128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 도박 사이트 서버를 설치하고 중국에서 서버를 관리했다. 범죄 계좌의 거래가 정지돼 수익금이 묶이는 것을 막기 위해 계좌당 1000만원 이상이 모이면 수익금을 곧바로 출금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