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의 실소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지난 5월3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29차례 재판을 거쳐 156일 만에 법원이 내린 결론은 검찰의 ‘판정승’이었다. 검찰 주장에 따라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로 인정되면서 다스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삼성 뇌물 등 굵직한 혐의들에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그 밖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공직임명대가 뇌물수수 혐의 등도 유죄로 인정하며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7000여만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형이 확정되고 사면 또는 가석방 등의 조치가 없으면 올해 만 76세인 이 전 대통령은 91세까지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된다.
MB, 다스자금 245억 횡령 등 8개 혐의 유죄
“다스 설립 및 경영 등에 깊이 관여”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실제로 소유하며 설립부터 경영, 승계 작업 전반에 깊이 관여했다고 봤다.

정계선 재판장은 “이 전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다스가 설립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나 후지기공 등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다스 유상증자에 사용된 김재정 명의의 도곡동 토지 매각 대금도 정황상 이 전 대통령 소유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가 이 전 대통령을 찾아가 회사 경영 상황을 보고한 점, 이상은 회장의 다스 지분을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 씨에게 이전하는 방안이 검토된 점 등도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과거 2008년 ‘BBK 특검’이 내린 결론이 10년 만에 뒤집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측근들의 ‘입’이었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다스 전·현직 임직원과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재산관리인’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 등 측근들은 다스의 실소유주로 일제히 이 전 대통령을 지목하고 나섰다.

변호인단은 이들 진술에 대해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기 위해 거짓 진술을 한 것”이라며 신빙성을 부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자신이 관여했던 부분의 구체적 기억에 근거해 진술하고 있다”며 “제3자들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와도 정황이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인 것으로 결론 나면서 다스에서 조성된 비자금 240억원과 법인카드 사용금액 5억원에 대한 횡령 혐의가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2005년 조성된 비자금 97억여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고, 선거캠프 직원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한 것이나 개인 승용차 구입 부분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횡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직원의 횡령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31억원대 법인세를 포탈한 혐의에 대해서도 포탈금액 중 일부만 인정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삼성이 대납한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67억여원 가운데 59억원에 대한 뇌물 혐의도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다스에 청구된 소송비용과 동일한 액수를 삼성전자가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에 지급한 사실에 주목했다. 정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2007년 10월부터 ‘VIP 보고사항’에 기재된 12만5000달러를 에이킨검프에 송금하기 시작했다는 자료가 나왔다”며 “당시 삼성의 비자금 특검, 금산분리 현안 등이 이 전 대통령 재임 기간 해결됐다”고 보고 뇌물의 대가성을 인정했다.

“측근에 모든 책임 전가”

국정원에서 넘어온 특수활동비 7억원 중 4억원에 대해 국고손실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뇌물 혐의는 무죄라고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업목적 외에 돈을 쓴 건 죄가 되지만 국정원장들이 특정한 대가를 바라고 이 전 대통령에게 지급한 뇌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1년 전달한 10만달러는 당시 원 원장이 경질 위기에 놓인 점 등을 토대로 ‘자리보전’ 등의 대가성이 인정되는 뇌물로 판단했다.

그 밖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에게 받은 22억원 중 일부와 김소남 전 의원에게서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받은 4억원 상당을 뇌물로 인정했다. 대통령 퇴임 후 국가기록원에 넘겨야 할 청와대 문건을 빼돌린 혐의는 검찰의 공소장 형식과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약 한 시간에 걸쳐 혐의별 유무죄 판단을 마친 정 부장판사는 마지막 주문을 읽기 전 이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질타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의혹이 밝혀지는 가운데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범행을 저지르고 본인을 모함하고 있다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건강 문제와 재판 중계 결정에 반발해 이날 선고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