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주요 근거지인 자산운용사 메리트원의 썬웨이 이사는 지난 6월8일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의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가 사흘전 이사회 장소로 통보받은 주소는 경기 안양시 동안구 경수대로 508번길 41. 안양교도소였다.

썬웨이 이사는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교도소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사회 의장이 구속 상태여서 불가피하게 이사회 장소를 교도소로 정했다는 게 파인아시아운용의 뒤늦은 설명이었다.

그날 이사회는 2주일 뒤 정기 주주총회 개최 등의 결정을 내린 뒤 10여분 만에 끝났다. 면회시간이 제한돼 있어서다. 썬웨이 이사는 통역도 없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있다가 이사회장을 나왔다. 파인아시아운용의 ‘교도소 이사회’는 지난 7월9일까지 네 차례가 이어졌다. 1999년 설립된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은 종합자산운용사로 현재 2조여원을 운용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파인아시아운용의 이례적 이사회는 대주주인 한글과컴퓨터(한컴)와 싱가포르 투자자들의 의결권 다툼에서 비롯됐다. 코스닥상장사인 한컴은 지난 4월 유상증자를 통해 파인아시아운용 전체 지분의 12.6%를 확보해 1대 주주로 올라섰다. 우호지분을 더하면 35.87%에 대해 한컴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파인아시아운용은 싱가포르계 투자자들이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 BSDCN의 9.33%를 비롯해 위섬(9.28%), 홉킨스홀딩스(8.75%), 왕키지(8.60%) 등이 주요 주주다. 싱가포르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한컴이 민감해하는 이유다. 일부 외국계 투자자는 이번 기회에 단순 투자를 넘어 파인아시아운용을 직접 운영하는 데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컴이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 외국계 투자자들의 적대적 움직임을 막고 특정 주주와 연대할 목적으로 판을 흔들고 있다는 게 해외 투자자들의 대체적인 정서다. 싱가포르계 주주사 관계자는 “‘교도소 이사회’는 싱가포르계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막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한컴은 여러 주주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인아시아운용은 6월29일 주주총회에서도 파행을 겪었다. 주총장에서는 재무재표 승인과 대표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지만 공증을 받지 못해 결국 부결 처리됐다. 주총의 결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증이 필요하지만 공증인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 한컴이 선임한 의장을 인정할 수 있는 데다 일부 투자자들의 의결권이 제한됐다는 싱가포르 투자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다. 파인아시아운용은 7월24일 임시 주총을 통해 재무재표만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대표이사 자리는 아직도 비어있다.

이에 대해 파인아시아운용 관계자는 “교도소에서 이사회를 연 것은 다섯 명의 이사 가운데 두 명이 싱가포르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 제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주총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는 추후에 적법하게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체 이사 다섯 명 가운데 세 명만 참석하면 이사회 결의를 할 수 있는데 굳이 교도소에서 면회시간에 이사회를 연 이유에 대해서는 특별히 해명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파인아시아운용이 갈등을 봉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을 이겨내야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컴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계 투자자들의 신뢰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개월간 갈등을 겪으면서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컴은 금감원으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단순 투자 목적이 아니라 경영을 하거나 최대주주가 되려는 주주는 금감원과 금융위의 승인이 필요하다. 한컴에 대한 금감원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일반적인 처리기한(2개월)을 넘겨서 진행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파인아시아운용과 관련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하고 있는데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싱가포르계 투자자들이 경영권을 쥐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금융감독원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