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법률회사(로펌)들은 1970~1980년 태동기를 거쳐 1990~2000년 폭발적인 성장기에 진입하게 된다. 변호사 개인별로 사무실을 차려 소송을 도와주던 시대가 지나고, 로펌을 설립해 기업별 소송과 자문 등 본격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열렸다.

로펌의 성장기를 이끈 주역들은 사법시험 1회부터 10회 출신들이 많았다. 주로 기존 로펌에서 독립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 로펌으로 키웠다. 1963년부터 시행된 사법시험은 작년말 폐지되기 전까지 50여년간 2만여명의 법조인을 양성하는 관문이 됐다. 1970년 이전까지는 절대평가로 시행되다 보니 합격자수가 한 해에 16명(1965년)에 불과했을 정도로 ‘바늘구멍 통과하기’였다.

◆증권법 ‘한 획’그은 신영무

로펌은 해외 유학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선진국 로펌을 모델로 만든 1세대 로펌과 1990년대 이후 이 로펌에서 독립해 세운 2세대 로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세종은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과 함께 대표적인 1세대 로펌으로 꼽힌다.

신영무 변호사(사시 9회)는 1983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서울고·서울대 법대 후배인 김두식 현 세종 대표(22회)와 세종을 설립했다. 신 변호사는 2년간 판사생활을 하다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1977년 예일대로 유학을 떠나 증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세종을 세운 신 변호사는 국내 증권거래법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최초 해외 전환사채(CB) 발행과 기업 공개매수 자문을 비롯해 금융기관 인수합병(M&A), 프로젝트 파이낸스(PF)에서 새로운 절차와 규정을 만들어내는 등 세종은 국내 증권거래법 선진화의 길을 터 왔다는 평가다. 신 변호사와 같은 서울고 출신인 황상현 전 세종 대표(8회)는 금융 자문 분야에서 세종을 국내 선두권으로 올려놨다.

세종은 2001년 송무분야 강자인 열린합동법률사무소와 합병하면서 로펌간 첫 합병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열린합동 출신인 강신섭 변호사(23회)가 2013년 세종 대표에 오르면서 조직간 융합도 일궈냈다는 평가다.

세종은 로펌 사상 처음으로 1991년 서구식 ‘파트너’제도를 도입해 설립자 1인 중심이 아닌 파트너변호사간 민주적 의사결정 체제를 갖췄다. 신 변호사가 2010년 ‘65세 정년퇴직’ 약속을 지키기위해 대표에서 물러난 것도 이 때문이다. 신 변호사는 2011~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도 지냈다.

내년 2월 세종은 현재 서울 퇴계로 스테이트타워에서 종로구 D타워로 이주해. ‘남산시대’를 마감하고 ‘광화문시대’를 열게된다.

◆후배 길 터준 우창록, 글로벌 지평 이끈 양영태

1990년대들어 법률 수요가 급증하면서 로펌업계는 2세대 로펌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김앤장 출신이 만든 로펌이 율촌이고 세종 출신들이 만든 로펌이 지평이다.

‘법률가 마을’이라는 뜻의 율촌(律村)은 1997년 설립됐다. 김앤장에서 회사법과 조세법 전문 변호사로 활약한 우창록 변호사(16회)를 주축으로 김앤장 출신 강희철 변호사(21회), 공정거래·조세 전문가인 윤세리 변호사(20회), 한봉희 변호사(26회) 등이 만들었다.

단일 지도체제하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율촌은 김앤장과 조직문화가 비슷하다. 우창록 율촌 대표는 김앤장 창립자인 김영무 변호사에 비견되는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M&A없이 자체적으로 성장했다는 점도 김앤장, 태평양 등과 비슷하다.

우 대표는 율촌이 20여 년간 압축성장을 하며 ‘1인당 생산성’을 국내 최정상급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율촌 파트너총회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율촌을 영속적이고 특정인에 종속되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기위해 나부터 내려놓지 않으면 안됐다”고 설명했다. 율촌은 내년 2월부터 단일 지도체제가 아닌 3인 공동대표 체제(윤용섭 강석훈 윤희웅 변호사)로 전환하는 ‘세대교체 실험’에 들어간다.

지평은 2000년 4월 세종에서 나온 10여명의 젊은 변호사들이 설립했다. 양영태 대표(34회)와 서울대 법대 동기인 임성택 변호사(37회)가 창립을 주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23회)도 합류해 2000년 국내 첫 여성 로펌 대표를 맡았다.

지평은 2008년 법무법인 지성과 합병하면서 국내 10대 로펌에 들게 됐다. ‘주인의식’과 ‘구성원의 행복’을 강조한 양 대표의 경영 철학 덕분에 지평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으로부터 ‘일터’로서 인기가 높다. 대입 전국 수석을 차지한 김지홍 변호사(37회)를 비롯해 연수원 성적이 뛰어났던 강율리 변호사(37회), 심희정 변호사(37회) 등 고시 및 입시 수석 출신들이 즐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양 대표는 지평이 로펌 중 가장 많은 9곳의 해외 사무소(베트남 미얀마 러시아 등)를 갖추도록 글로벌 경영을 진두지휘했다.

◆공정거래법 ‘대가’ 윤호일, 바른 키운 김재호

화우는 2003년 송무에 강한 로펌 화백과 기업자문에 강한 우방이 합쳐져 탄생했다. 1989년 우방을 설립한 윤호일 화우 대표(4회)는 1979년부터 세계 최대 로펌인 베이커앤맥킨지에서 10년간 파트너변호사로 활약했다. 1980년대 해외기업의 한국 자문을 전담해온 그는 국내 공정거래 법률 자문시장의 개척자로 불린다.

화백은 1993년 고(故) 노경래 변호사(7회)와 부장판사 출신 양삼승 변호사(14회)가 만들었다. 화우 영문명이 ‘윤&양’인 것도 이 때문이다. 화우는 2006년 다시 특허분야에 강점을 가진 로펌 김·신·유와 합병한다. 화우는 두 번의 합병을 거치면서 수평적 조직문화와 폭넓은 개방성을 갖게 됐다.

바른은 판사 출신 김재호 변호사(26회), 홍지욱 변호사(26회), 강훈 변호사(24회) 등이 1998년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당시 브로커(사무장)를 고용해 영업하는 잘못된 관행을 깨고 변호사가 직접 영업한다는 의미에서 ‘바른’이름을 갖게 됐다.

문성우 전 대검차장(21회·현 바른 대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24회), 김용균 전 서울행정법원장(19회) 등 쟁쟁한 ‘전관’들을 영입함으로써 대법원 민·형사사건을 가장 많이 수임하는 로펌으로 알려지게 됐다.

◆도산법 ‘대가’ 김진한,‘야당 당수’황주명

대륙아주는 김대희 대표(28회)가 만든 대륙과 김진한 고문(32회)이 만든 아주가 2009년 합병하면서 설립됐다. 국내 기업 도산분야 대가인 김 고문의 영향으로 대륙아주는 기업구조조정 자문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송무에 강한 동인은 2004년 차장검사 출신 이철 대표(15회)와 정충수 전 검사장(13회) 등 변호사 5명이 설립했다. 기여한만큼 철저히 보상해주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퇴직한 고위 판·검사들이 재취업할 때 가장 많이 찾는 로펌으로 알려져 있다.

로고스는 2000년 양인평 전 부산고등법원장(2회)과 전용태 전 대구지검장(8회) 등 변호사 12명이 설립해 현재 116명을 갖춘 대형로펌으로 성장했다. 송무와 자문에서 고른 실적을 내고 있고 2006년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기업자문에 강점을 지닌 충정은 1995년 황주명(고등고시 사법과 13회) 변호사, 목근수·박상일 대표 변호사(23회), 최우영 대표(24회) 등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황 변호사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요청으로 대우에서 2년간 상무로 재직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에 쓴소리를 많이해 ‘야당 당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 동기인 이재후 변호사(현 김앤장 대표)를 경기고 2년 후배인 김앤장 설립자 김영무 변호사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