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 압박 후 '코드 훈장'… 이석태 헌재 재판관 후보자 훈장 또 논란
정부가 이석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에게 지난 4월25일 ‘법의날’ 국민훈장 최고 등급인 무궁화장을 수여하는 과정에서 대한변호사협회를 압박하고, 관련 규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보자는 당초 변협의 무궁화장 추천 후보 명단에 없었다가 정부 압박 후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2003~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 밑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맡았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10일 열린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변협은 무궁화장 추천 후보로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을 1순위로, 우창록 변호사를 2순위로 추천했다. 우 변호사가 결격 사유로 훈장을 받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하 전 회장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가 변협 임원에게 전화를 걸어 “하 전 회장은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추천하라”고 요구하면서 판이 흔들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복수 추천을 해달라고 전화한 것이지 '하 전 회장은 안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변협은 지난 3월 정부 요구대로 두 명을 더 추천했다. 윤호일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와 이 후보자를 각각 2~3순위로 추천한 것이다. 변협 관계자는 “정부가 훈장 추천에 압력을 가한 것”이라면서도 “이 후보자를 넣어 달라고 직접 요구한 것은 아니다”고 말을 아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가 박재승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추천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변협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변협 압박 후 '코드 훈장'… 이석태 헌재 재판관 후보자 훈장 또 논란
정부의 ‘이석태 구하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이 후보자에게 훈장을 주는 과정에서 상훈법과 정부포상업무지침 등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훈법 제5조에 따르면 서훈을 추천할 때 반드시 공적심사위원회(공심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법무부는 지난 3월30일 26명의 정부포상 및 장관표창 후보자 가운데 15명을 ‘직접’ 뽑았고 ‘사후적으로’ 공심위에 제출했다. 당초 법무부 인권국이 공심위에 낸 15명 명단엔 하 전 회장과 윤 대표변호사가 포함됐다. 하지만 법무부 혁신행정담당관실에서 “무궁화장을 그동안 1명만 추천했는데 왜 3명을 하나. 단수로 다시 추천하라”고 인권국에 지시하자 1순위(하 전 회장)와 2순위(윤 대표변호사)가 탈락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떨어진 13명은 대부분 범죄경력이 있는 등 결격사유가 있거나 문재인 정부 국정기조에 맞지 않는 후보들"이라며 "서훈 절차에서 정부의 재량권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와관련 "26명을 13명으로 추린 것에 대한 법적 근거를 대라"고 법무부에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내 로펌 한 대표변호사는 “상훈법상 ‘공심위를 거쳐야 한다’는 표현은 ‘사후적 통보’가 아니라 ‘실질적인 심사’를 의미한다”며 “법무부가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4일 공심위는 정부포상업무지침상 ‘대면회의’ 원칙도 지키지 않고 서면회의로 대체한 후 일사천리로 최종 수훈자를 확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서면회의도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부가 초기단계에서부터 공심위의 심사없이 자의적으로 수훈자를 추렸고, 최종 공심위원회도 서면으로 대체돼 실제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며 “절차상 문제가 발견된 만큼 국정감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한 원로는 "문재인 정부가 ‘적폐’로 규정한 박근혜 정부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