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년4개월차로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는 요즘 참 고민이 많을 것이다. ‘고용 참사’ ‘소득 분배 악화’ 등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데다 에너지, 교육, 부동산 정책도 모두 길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현 정부가 가장 내세우고 싶어 하는 남북 관계 개선도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북한 비핵화는 실제로 진전된 게 거의 없고 남북 관계는 미국으로부터 ‘속도 위반’ 경고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정책 실패, 대부분 예상됐던 것왜 이렇게 됐을까. 사실 지금 이 정부가 맞닥뜨린 숱한 문제들은 대부분 예견된 것들이다. 말 많은 소득주도성장만 해도 그렇다. 최저임금을 다락같이 올리면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불완전 취업자나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 등 소위 ‘을(乙)’들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것은 노동시장 구조를 아주 조금만 이해하고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이런 일은 탈(脫)원전, 대학입시, 부동산 정책 등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조차 우려한 상황이 그대로 전개되고 있다. 북핵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미·북 회담’에 묻히는 듯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듯하다.그런데도 이 정부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런 지적을 ‘반대를 위한 반대’쯤으로 치부해왔다. ‘촛불혁명의 명령에 어깃장 놓기’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어떤 정책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 정책을 지금 모두 재단하는 것은 성급할 수도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용 상황은 연말, 소득 개선 효과는 내년 하반기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하지만 다른 분야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 문제에서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시장과 맞서고 시장을 거스르는 정책은 성공하기는커녕 반드시 ‘시장의 복수’를 부른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처럼 가격(임금)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임금 수준은 노동시장의 자원(인력) 배분에서 핵심적 기능을 한다. 이런 임금이 시장 밖 요인으로 단기간 급등하면 노동시장 전체의 수급과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고용 참사’와 ‘분배 악화’는 그 결과다.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집값 폭등을 예상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와 똑같이 규제를 쏟아낼 것이고 그러면 집값은 더 크게 뛸 것이라는 얘기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집값 상승을 모두 ‘투기’ 탓으로 돌리고 수요를 죽이려고만 하니 집값은 더더욱 폭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계속 고집하면 큰 위기 올 수도장 실장을 비롯한 현 정부 경제팀은 정말 이럴 줄 몰랐을까. 몰랐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요, 알고서도 계속 밀어붙인다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현 정권이 ‘자기 당위성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지켜야 하고 ‘밀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이 정권이 아니라 이 나라의 운명이다. 주요 경제지표가 외환위기 혹은 금융위기 후 최악을 기록 중이고 “이대론 안 된다”는 경제 원로들의 경고가 잇따르는데도 이 정부는 제 갈 길을 계속 가겠다고만 한다. 여기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휘두르는 무역 보복의 유탄이라도 맞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부디 이번엔 안 좋은 예상이 적중하지 않기를 바란다.kst@hankyung.com
정부, 연구용역 반영한 원전산업 지원대책 지난 6월 발표"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분야 전체 일자리 늘릴 것"탈원전 정책으로 2030년 원전산업 인력수요가 지금보다 감소하지만, 원전 수출을 성사시키면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정부 연구용역 결과가 공개됐다.정부는 이미 발표한 원전산업 지원대책을 통해 원전 안전운영과 수출에 필요한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고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신산업 일자리 창출을 통해 에너지 분야 전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입장이다.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2월 딜로이트와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원전산업 생태계 개선방안과 원전 기술인력 수급 및 효율적 양성체계, 원전지역 경제활성화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산업부는 탈원전으로 원전 관련 산업과 지역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보고 보완대책을 마련하고자 연구용역을 발주했다.정부는 지난 6월 21일 발표한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에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반영했다.보고서는 탈원전으로 향후 원전 수가 감소하면 원전시장이 축소되고 업체들이 원전산업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보고서는 국내 원전이 정부 정책대로 단계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전제로 해외 원전 수주 여부에 따라 원전산업 인력 수요를 4개 시나리오로 전망했다.원전 수출 없이 탈원전을 진행하는 시나리오 1에서는 인력 수요가 올해 약 3만9천명에서 2030년 2만6천700명으로 감소한다.사우디 원전 2기와 소형 원자로 2기를 수주하는 시나리오 2에서는 인력 수요가 2022년 4만2천500명을 찍고 2030년 2만7천100명으로 감소한다.사우디에 더해 영국 원전 2기를 수주하는 시나리오 3에서는 2022년 4만3천700명까지 증가했다가 2030년 2만9천800명으로 내려앉는다.사우디, 영국에 체코와 폴란드에서 각 2기를 수주하는 시나리오 4에서는 2026년 4만6천300명까지 늘었다가 2030년에 올해 수준인 3만9천500명으로 돌아온다.보고서는 시나리오 4를 제외한 모든 경우 2023년부터 인력수요 감소가 시작되고 2025년부터 수요가 현재 인력인 3만8천810명보다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다만 보고서는 현재 수준의 신규 채용을 유지하고 정년퇴직 등 자연스럽게 감소하는 인력을 고려하면 탈원전 영향 없이도 올해 3만8천400명인 원전산업 종사자가 2030년 3만명으로 감소한다고 전망했다.이에 따라 시나리오 1과 2에서는 2030년 인력 수요가 공급보다 작지만, 시나리오 3과 4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거나 수요가 더 많게 된다.보고서는 원전 관련 설계, 시공, 보조기기, 예비품, 정비서비스 업체를 대상으로 원전산업 이탈 의향을 조사했다.원전산업을 유지하겠다는 답은 설계 0%, 시공 27%, 보조기기 33%, 예비품 17%, 정비서비스 25%로 나타났다.이탈하겠다는 기업은 설계 9%, 나머지 분야 0%로 조사됐다.나머지 기업들은 아직 결정하지 못하거나 응답하지 않았다.보고서는 원전 안전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자재·서비스 분야 기업과 원전 수출 관련 기업들을 선별해 지원할 것을 건의했다.우리나라보다 먼저 원전을 축소한 미국, 독일, 영국, 일본은 원전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주변국으로부터 원전 기자재와 서비스를 수입하기 어려운 지리적·기술적 특성을 고려해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산업부는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6월 21일 원전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연구개발(R&D)과 투자를 확대하고 원전 안전운영과 생태계에 필요한 핵심인력 유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보고서의 인력수요 전망은 정부의 지원대책 효과를 반영하지 않았다.산업부도 탈원전으로 원전산업이 축소되는 점은 인정하지만, 에너지전환 정책의 다른 축인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서 에너지 분야 일자리는 전체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연합뉴스
“탈(脫)원전 정책이 계속된다면 원자력 전문 인력들이 대거 탈출해 결국 국내 학계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47년의 원자력 연구 인생을 마치고 31일 정년퇴임하는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사진)는 “원자력 생태계가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지만 산업과 교육을 일구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 같이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중국은 대학과 국책 연구소을 중심으로 한국의 우수 인재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며 “탈원전 정책으로 새롭게 연구를 시작하는 제자들이 점차 줄어들면 교수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실제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올해 하반기 2학년 진학 예정자 가운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 교수는 “탈원전 이후 불투명한 산업의 미래에 학생들의 진로 고민이 많아진 게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아직 정부가 원전 수출만큼은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고 강조했다.황 교수는 1971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에 입학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해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 왔다. 동시에 학계, 원전 관련 기관, 산업계, 언론계, 학생들과 함께 만든 원전수출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을 맡는 등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는 ‘행동파’ 교수로 자리매김했다.황 교수는 “환경단체들이 안전성 논란으로 국내에 짓지 않는 원전을 해외에 수출할 수 없다며 반대 집회를 여는 모습을 보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원전수출국민행동본부를 결성했다”며 “지난 4월 광화문에서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를 열고 1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원전에 대한 과도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황 교수는 정년 퇴임 이후에도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 회장 등을 지냈는데 최근 1년 동안 국내 이슈로 해외 활동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앞으로 사용후핵연료 소멸 기술 개발, 한미 원자력 협력 증진 등 국제 원자력계에 산적한 과제들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황 교수는 학생들에게 “원전 기술을 꾸준히 갈고닦아 한국이 에너지 수출 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교훈을 가슴 속 깊은 곳에 품고 미래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