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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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광역·기초단체장을 배출한 대학은 어디일까. 당선자 243명의 약 10%(26명)가 이 대학 출신이다. 이 학교는 국내 최초 원격교육 대학으로 온·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할 수 있다. 등록금은 한 학기 30만원대로 문턱이 낮다. 그래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나 경력단절여성 등에게 ‘희망사다리’로 불린다.

1972년 개교 이래 46년간 67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의 얘기다. 류수노 방송대 총장(62)은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대학은 배움에 갈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며 “지난해 청년장학금, 실버장학금 등을 신설했고 올해는 재취업준비자 입학장학금을 만들어 ‘흙수저’에게 단비 같은 학교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의 모교 출신 총장

류 총장에게 방송대의 의미는 남다르다. 자신도 방송대를 통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송대 출신으로 방송대 총장이 된 건 류 총장이 처음이다.

충남 논산 농사꾼 집안에서 열 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난 류 총장은 “집안일을 거들어야 한다”는 부모님 뜻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일을 했다. 군대에서 또래 대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뒤늦게 ‘공부의 맛’에 눈을 떴다. 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26세에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류 총장은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의자 다리에 내 다리를 묶어놓고 공부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공부의 맛’이란 걸 그때 알았다”며 “공부에 맛 들일 기회를 제때 누리지 못한 학생들에게 그 기회를 주는 것도 방송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모교 출신 류 총장이 취임하면서 방송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기를 다소 꺼리던 동문들의 모습도 변했다. 방송대 관계자는 “요새는 밖에서 만나면 ‘나도 방송대 출신’이라며 반갑게 인사하는 분들이 늘었다”며 “직원들끼리 ‘류수노 효과’라고들 한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조재연 대법관 등도 방송대 출신이다.

◆선취업 후학습, 평생교육에 앞장

류 총장은 “입시에 매몰된 한국 교육에서 방송대야말로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되새기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흔히 ‘대학에서 배운 건 사회에 나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들 한다”며 “방송대는 선취업 후학습, 평생교육에 앞장서면서 ‘살아 숨쉬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대 재학생의 80%가 일과 학습을 병행 중인 직장인이다. 학사 학위를 수료한 뒤 재취업 등을 위해 다시 방송대의 문을 두드린 이들도 재학생의 60%에 달한다. 공부의 효과를 실감한 학생들이 스스로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공부’를 중시하는 류 총장의 성격은 연구실적에서도 드러난다. 1999년 방송대 농학과 교수로 취임한 뒤 9개 쌀 품종을 개발했다. 2009년엔 항산화 항암효과가 있는 쌀 ‘슈퍼 자미’를, 2016년에는 비만과 당뇨 억제 효과가 있는 쌀 ‘슈퍼 홍미’를 개발했다. 쌀 관련 논문은 139편에 달하고, 국내외 특허 등록 21건을 보유하고 있다. 품종 개발에 몰두하느라 올해 처음 여름휴가를 다녀왔을 정도다. 류 총장은 “총장이 되고 나니 제가 휴가를 안 가면 직원들이 괜히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올해 처음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방송대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대학 교육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부터 모잠비크, 짐바브웨, 르완다 등에 원격교육모델을 전수하는 ‘아프리카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교육 혁신사업’을 하고 있다. 류 총장은 “방송대는 전 국민의 교육복지 향상과 대학교육 보편화를 위해 설립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국민의 대학’”이라며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마중물이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약력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73년 검정고시 고교과정 이수
△1977년 충남 천안시 9급 공무원 임용
△1979년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7급 공무원 임용
△1985년 방송대 농학과 졸업
△1989년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1993년 충남대학원 석·박사
△1995년 일본 나고야대 객원연구원
△1999년 방송대 농학과 교수
△2018년 2월∼ 방송대 총장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