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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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주형철 한국벤처투자 사장(53)은 1989년 SK(주)에 입사해 승승장구했다. 내비게이션 앱(응용프로그램) 티맵 등 1990년대 SK그룹의 정보기술(IT) 혁신 프로젝트에 대거 참여한 그는 2008년 43세에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가 됐다.

40대 초반에 ‘대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을 뛰어넘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샐러리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2011년까지 3년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맡아 싸이월드로 국내 소셜미디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런 그가 2012년 홀연히 사표를 내고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늦은 여름 서울 교대역 인근 한정식집 동백길에서 만난 주 사장은 “병마와 싸우던 아내를 돌보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이 메는지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이어 “기업에서 ‘이윤 추구’라는 목표를 향해 24년을 달려왔으니 이제 ‘사회’와 ‘사람’ 등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둔 인생 2막을 열겠다는 생각도 컸다”고 얘기를 풀어나갔다.

노조 조직하려고 SK 입사한 운동권 청년

주 사장의 부모님은 6·25 전쟁 때 피란 와 대전에 터를 잡은 실향민이었다.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을 하며 2남2녀를 키웠다. 그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데 시험 성적은 잘 나오는 재수 없는 유형이었다”며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때마침 음식이 들어오자 그는 얼음이 동동 뜬 녹차물에 밥을 말아 한 숟갈 뜬 뒤 마른굴비찜 한 점을 올렸다. “보리굴비를 입에 넣었을 때 슬며시 퍼지는 비린내와 짠내가 압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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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헌신 덕분에 큰 굴곡 없이 자란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1983년 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동아리 골방에서 선배들이 건넨 ‘1980년 광주’의 사진 한 장에 충격을 받으면서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날 이후 대전 출신 모범생은 캠퍼스보다는 시위 현장에 더 자주 나타나는 민주화운동 투사가 됐다.

40대 초반에 대기업 CEO

탕평채무침, 미역국, 삼색전, 잡채와 조기찜 등 입맛을 돋우는 이 가게의 밑반찬을 권하던 주 사장은 대기업 입사에 얽힌 뒷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강성 운동권이던 내가 SK그룹에 입사한 건 사실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가 지부장으로 있던 청년과학자기술협의회가 사무직 노조를 조직하려는 운동권 외곽 단체였다는 설명이다.

1990년대 초는 SK그룹이 IT 신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휴대폰 스카이 시리즈로 유명한 SK텔레텍 설립을 비롯해 PC통신 넷츠고, 음악사이트 멜론, 메신저 네이트온 등의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일 중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몰입했다. 주 사장은 “대학 때 시위하느라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배워가면서 일했다”며 “일이 너무 재밌어서 밤을 새우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를 맡아 싸이월드를 국내 1위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키워냈다. 그는 “많은 애정을 가졌던 싸이월드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은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부인과 사별 후 교육사업에 뛰어들어

주 사장이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에서 물러난 건 부인인 사진실 중앙대 교수의 병세가 악화돼서다. 전북 무주로 내려가 집을 지은 뒤 부인을 돌봤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 같다”고 하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인 부인을 위해 함께 합창단 생활도 마다하지 않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병마를 떨쳐내지 못하고 3년 전 여름 세상을 떠났다. 주 사장은 “아내는 17년이란 세월을 암과 싸웠다”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 잘 돌봐주지 못한 게 한으로 남는다”며 가슴을 쳤다.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막걸리 한 잔을 마신 주 사장이 술잔을 돌렸다. 소문난 애주가인 그는 소주와 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가끔 마시는 와인 중에서는 로버트 몬다비를 좋아한다.

부인을 돌보면서 그가 일했던 곳은 네이버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키우기 위해 설립한 NHN넥스트였다. “미국 MIT를 뛰어넘는 인재양성소를 만들어 달라”는 네이버의 제안에 그는 부학장 겸 교수로 합류했다. 사직을 만류하던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남은 인생을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싶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확인하곤 응원을 보내줬다.

주 사장은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과 인문학적 소양에 경영 마인드까지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별 성장 스토리를 더 쉽게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소설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을 직접 집필했다. 그는 “나중에 사회 활동을 모두 마치면 작가로 살고 싶다”며 “아직 출간하지 못한 리더십 등에 관한 책이 두 권 더 있다”고 했다.

서울시와 함께한 일자리 만들기

NHN넥스트에서 인재 양성에 매진하던 그에게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산업진흥원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 중에 으뜸이 일자리 창출이라고 생각한 그는 공모에 지원해 2015년 서울산업진흥원 사장이 됐다.

주 사장은 이후 서울시 사업에도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 중소기업 제품을 팔아주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시는 가게 다섯 곳을 내 중소기업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유통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11번가, G마켓 등과 연계해 온라인 판로를 열자고 제안했다. 온라인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이 금세 소문을 타면서 6억원에 불과하던 연간 매출은 2400억원으로 불어났다.

대학생들을 벤처업계에 취직시키는 ‘스타트업 인턴즈’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은 가능성 있는 기업과 열정 있는 150여 명의 대학생을 연결시켜줬다.

한국벤처투자에 ‘혁신 바람’ 주입

서울산업진흥원에서 벤처·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알게 된 그는 지난 2월 한국벤처투자 사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취임 6개월 만에 벤처업계의 ‘갑’으로 불리던 한국벤처투자를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SK그룹 CEO 출신답게 민간 경영 방식을 한국벤처투자에 적극 도입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신규약 제정포럼’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투자 활성화를 가로막는 모태펀드의 출자 규약을 과감하게 손질했다. 한 펀드가 같은 기업에 펀드 결성액의 20% 이상을 투자하지 못하도록 막는 벽을 허물었다.

한국벤처투자가 KEB하나은행에서 1000억원을 유치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비상장 신생 기업) 양성을 위한 펀드를 설립한 것도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민간 자금이 모태펀드에 들어온 첫 사례로 기록됐다.

주 사장은 “SK LG 롯데 같은 대기업이 민간 출자자로 나서주면 벤처생태계가 또 한번 확장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모태펀드가 운용을 잘해서 KEB하나은행이 돈을 많이 벌도록 해주겠다”고 강조했다.

■모태펀드 운용해 벤처자금 시장에 공급

한국벤처투자는 벤처자금을 시장에 공급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성장시키려는 목적으로 2005년 6월 설립된 모태펀드 운용기관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10개 정부 부처 출자금을 모태펀드 재원으로 활용한다. 출자사업을 통해 민간과 함께 투자하는 방식으로 벤처자금을 시장에 공급하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2005년 설립 후 모태펀드 조성액은 4조297억원. 이를 기반으로 19조7432억원을 벤처투자 시장에 공급했다.

△1965년 대전 출생
△1983년 대전 대신고 졸업
△1989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2003년 매사추세츠공과대 경영학석사(MBA)
△1989년 SK(주) 입사
△2005년 SK텔레콤 유비쿼터스 비즈본부장
△2006~2007년 SK C&C 기획본부장
△2008년 SK(주) 정보통신담당 임원
△2008~2011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2012~2015년 NHN넥스트 부학장
△2015~2018년 서울산업진흥원 사장

△2018년 2월~ 한국벤처투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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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형철 사장의 단골집 동백길
남도 특유의 손맛… 솔잎향 마른보리굴비가 별미

동백길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법원 등이 밀집한 법조타운에 있다. 서울지하철 2, 3호선 교대역 10번 출구로 나와 국민은행 교대역 지점을 끼고 100m가량 오르막을 걸으면 나온다. 법률구조공단 앞 한승아스트라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남도 특유의 손맛으로 유명한 한정식집 동백길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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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길은 전라도 밥집 특유의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준다. ‘마른보리굴비정식’(3만5000원)이 대표 메뉴다. 마른보리굴비 외에 고들빼기김치, 갈치속젓, 어리굴젓, 우거지찜, 잡채, 각종 나물 등 20여 가지 반찬이 입맛을 돋운다.

이 집 보리굴비는 법성포산 굴비를 11개월 동안 말린 것이다. 마른 굴비를 쌀뜨물에 4시간을 담갔다가 건진 뒤 찜통에 찐다. 다시마, 무, 생강, 바지락 등을 우린 육수를 끓여 김이 오를 때 솔잎을 넣고 함께 쪄내는 게 이 집만의 비법이다. 은은한 솔향이 밴 짭조름한 명품 굴비찜을 냉녹차물에 만 차가운 밥과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입안에 퍼진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