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서 다운로드 받은 파일 대부분에 암호 걸렸고 풀려고 한 흔적 없어
파일 1개는 암호가 필요없었지만 연구개발과 관련없는 정보여서 2심서 무죄
“파일을 다운로드했다는 것만으로는 영업비밀유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대기업 차장급 연구원이 동종업계로 이직하면서 영업비밀 유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해당 연구원에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최종적으로 무죄 판정을 내렸다. 직원이 이직할 때 단순히 자신의 파일을 다운로드 받은 것 만으로는 영업비밀유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이 사건은 국내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던 연구원이 동종업계의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전 직장 내 컴퓨터에서 자신의 업무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면서 문제가 됐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전 직장 업무와 유사한 제품 연구개발에 참여한 것을 파악한 전 회사 관계자가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증거를 확보했다. 검찰은 업무상 배임 및 영업비밀사용을 공모했다는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이직자와 그가 새로 다니게 된 직장의 대표이사를 기소했다.

지난해 7월 법원 1심 판결에서는 부정경쟁방지법위반(영업 비밀 사용) 혐의가 있는 것으로 적시된 35개 파일 중 34개 파일에 대해 무혐의가 확정됐다. 사건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율촌이 디지털포렌식(PC, 휴대폰 분석을 통한 범죄 증거 확보)을 통해 파일의 실행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재판부에 입증했기 때문이다. 암호해제 프로그램이 없다보니 다운로드 받은 파일도 사용이 불가능한데다 실행 흔적도 없다는 점이 인정됐다. 하지만 암호화가 안된 나머지 1개 파일에 대해 실행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법원에선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 율촌은 해당 파일에 대한 기술적 분석, 전문가 증언 등을 통해 연구개발과 관련없는 정보였다는 점을 입증해 무죄판결을 받는 데 성공했다. 양벌제 규정으로 같은 혐의를 받아왔던 회사도 누명을 벗게 됐다. 검찰도 상고를 포기하면서 무죄 판결을 확정됐다.

율촌은 이번 사건의 수사단계부터 항소심까지 3년간 피고인 변호를 맡았다. 율촌 송무그룹의 정태학, 김학석, 조규석 변호사와 지적재산권그룹의 임형주, 하성재 변호사가 참여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파일 유출, 동종업계의 이직, 유사한 연구개발 지속이라는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무죄선고가 흔치않는 영업비밀 사건에서 율촌이 무죄판단을 이끌어냈다”며 “단순히 자신의 회사 파일을 가져간 것만으로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성립하지 않다는 선례도 남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업무상 배임에는 해당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