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대형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로펌 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ISD는 규모가 조(兆)단위로 다른 소송 사건보다 크고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2~3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수주에 성공할 경우 로펌에 큰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ISD 소송 결과에 따라 로펌시장의 판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론스타에 투입한 정부 예산만 400억

로펌 'ISD 喜悲'… 태평양·율촌 '긴장' 광장 '화색'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스위스 승강기 제조업체인 쉰들러의 3000억원 규모 ISD에 대응할 국내 로펌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정했다. 쉰들러는 현대그룹의 ‘경영권 방어’ 목적 유상증자를 정부가 방관했다며 ISD 절차에 들어갔다. 태평양은 미국 로펌 아널드앤드포터와 함께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승인 지연과 과세에 불복하며 제기한 ISD의 정부 대리도 맡고 있다. 태평양은 그러나 법조계에서 론스타 ISD에 대한 패소 전망이 나오는 데다 아널드앤드포터가 정부에 높은 수임료를 청구하면서 구설수에 올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부가 론스타 ISD 대응에 투입한 예산만 4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대우전자) 매각 과정을 문제 삼아 이란 ‘다야니’가(家)가 제기한 730억원 규모 ISD에서 지난 6월 정부가 패소하자 정부를 대리했던 율촌은 비상이 걸렸다. 현재 취소소송을 진행중이다. 정부도 승소를 확신했던 터라 충격이 오래가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야니 패소 소식에 관련 부처(금융위원회 법무부 등)에 ISD 대응인력 확충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장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1조원대 ISD에서 정부 대리를 모두 맡아 올해 가장 많은 ISD 사건을 수임한 로펌이 됐다.

◆ISD로 수익활로…세 불리기 나서

올해 들어 엘리엇 메이슨 쉰들러 등 외국계 자본의 공격으로 한국은 세계 최대 ISD 피청구(6조6000억원) 국가가 됐다. 그러나 로펌업계는 새로운 수익의 활로가 생겼다며 세 불리기를 통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윤병철 변호사가 이끄는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하노칼 ISD 승소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변호사 730명)인 김앤장 네트워크를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김갑유 변호사가 이끄는 태평양 국제중재소송팀은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전담 인력(70명)을 앞으로 100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임성우 변호사가 이끄는 광장 ISD대응팀은 최근 김앤장, 세종, 법무부 출신 전문가를 공격적으로 영입해 ‘ISD 인력 진공청소기’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ISD를 제기한 외국 업체를 대리할 경우 수익은 두 배로 껑충 뛴다. 하지만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선뜻 나서는 로펌은 없다. 론스타 사건을 전담 처리해온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론스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국익 차원에서 ISD 수임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론스타는 김앤장에 맡긴 8000억원 규모의 조세 소송 일감을 모두 율촌으로 넘기는 ‘보복’을 단행하기도 했다. 현재 론스타와 엘리엇 소송 국내 대리는 세종에서 독립한 KL파트너스가 맡고 있다.

정부는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에서 엘리엇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자 비상이 걸렸다. 패소하면 청구금액 이상의 막대한 혈세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ISD는 패소할 경우 승소한 측 변호사 비용을 패소한 측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