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한국 정부에 '8천억대 투자피해' 소송
법원 "삼성 합병 찬성에 朴지시·승인"… 엘리엇 소송 영향 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법원의 항소심 판단이 나오면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24일 박 전 대통령의 2심 판단을 내리면서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는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아닌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안건을 처리한 건 복지부의 부당한 지시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실제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과정에 부당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까지 유죄를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복지부의 이런 개입이 기금운용의 독립성 원칙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투자위가 합병안에 찬성한 배경에도 비합리적인 합병 비율, 급조된 합병 시너지 분석 결과,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의 압력 행사 등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런 일련의 행위가 일어난 궁극적인 배경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6월 말 당시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에게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점을 핵심 근거로 삼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 문제는 고용복지수석실 소관이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관여한 것도 재판부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관련 재판들에서 김진수 당시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도 "안 전 수석이 '삼성 합병 건은 경제수석실이 챙기니 고용복지수석실은 챙길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재판부는 삼성 합병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보더라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후 국민연금 이사장에 취임했다.

합병 당시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은 청와대 측에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의 이사 연임 요구가 들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원의 이날 판단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낸 엘리엇 측에 유리한 자료로 쓰일 개연성이 크다.

합병 전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던 엘리엇은 "박 전 대통령에서 국민연금공단까지 이어진 부정부패로 인해 엘리엇 및 다른 삼성물산 주주들이 불공정한 손해를 입었다"며 중재신청서를 제출했다.

현재 중재 기간이 지나 소송 단계로 접어들었다.

엘리엇이 주장한 피해 금액은 약 7억7천만 달러(약 8천600억원) 상당이다.

다만 이날 판결과 달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에서는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엘리엇이 제기한 ISD의 유불리 기류도 달라질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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