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의료용 로봇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세브란스병원이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로봇수술 2만 회를 달성하는 등 한국은 세계적인 로봇수술 강국으로 꼽힌다. 다국적 의료기기 업체 인튜이티브서지컬 등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최근에는 토종 기술로 개발된 의료용 로봇까지 잇따라 나오고 있어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의료용 로봇 '격전지'로 떠오르는 한국
◆수술로봇 국산화로 시장 확대

10년에 걸친 개발 끝에 첫 국산 복강경 수술로봇 ‘레보아이’를 출시한 미래컴퍼니는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기쁨병원에 제품을 판매하며 첫발을 뗐다. 미래컴퍼니는 경쟁사인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다빈치 대비 40%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미래컴퍼니 관계자는 “고가의 다빈치를 부담스러워하는 중소병원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보아이 임상시험에 참여한 세브란스병원을 포함한 대형 병원들도 레보아이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웅규 세브란스병원 로봇내시경수술센터 소장은 “국산 수술로봇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용 로봇 '격전지'로 떠오르는 한국
복강경 수술로봇 시장을 독점하던 인튜이티브서지컬은 기존 제품보다 한층 진일보한 신제품으로 시장 수성에 나선다. 이 회사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이달 말 한국에 ‘다빈치SP’를 출시한다. 이 제품은 로봇팔을 4개에서 1개로 줄인 차세대 단일공 수술로봇이다. 절개 부위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몸 안의 깊숙한 부위 접근성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비뇨기과 수술용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외과 등으로 용도를 넓혔다.

의료계에서는 수술로봇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술로봇 도입이 활발해지면 기기값과 수술 비용이 낮아지고 로봇수술의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산 수술로봇 개발 ‘봇물’

국산 수술로봇 개발 움직임도 활발하다. 국내 의료진의 뛰어난 의료기술, 제조업체의 기술력, 풍부한 임상 환경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KAIST 미래의료로봇연구단은 최근 자체 개발한 원격 내시경 수술로봇 ‘케이-플렉스(K-FLEX)’로 살아 있는 돼지 담낭을 절개하는 전임상시험에 성공했다. 케이-플렉스는 식도, 요도, 항문 등 인체의 구멍으로 부드럽게 들어갈 수 있고 병변 제거 시 초소형 로봇팔이 나와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제품이다. 연구팀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서지컬 로봇 챌린지’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3차원 검사장비 업체 고영테크놀러지는 세계 최초의 뇌 수술용 의료 로봇 ‘제노가이드’를 개발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국내 출시 및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재활로봇 전문 기업 큐렉소도 지난 3월부터 연세의료원과 함께 척추수술로봇을 제작하고 있다. 오는 10월에 시제품이 완성돼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출시된다.

유요엘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의료용 로봇 개발 초기 단계부터 정부, 병원, 기업이 힘을 합치면서 수술로봇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며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국내 의료진의 조언도 경쟁력 향상에 일조했다”고 말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