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박원순式 개발'의 한계
“동네 구멍가게들이 사라졌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1 대 99 사회가 골목경제를 어떻게 유린하는지 잘 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달 초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시민단체 등에서 나올 듯한 이 발언은 “강북구 삼양동 생활을 통해 새로 구상한 개발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박 시장은 “(계획을) 미리 말하면 재미없잖나. 기대하라”며 비책이 있는 것처럼 자신했다.

박 시장이 ‘쇼 논란’ 등 말 많던 옥탑방 한 달 체험을 마치고 지난 19일 지역균형발전 정책구상안을 내놨다. 강남·강북 격차를 줄이겠다며 비(非)강남권에 교육·주거 등 인프라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취지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나 각론을 들여다 보면 재탕 정책이 많았다. 자율주택·가로주택정비사업, 집수리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골목경제를 살리겠다는 ‘지역선순환 생태계 구축안’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동네살리기 도시재생’과 비슷했다. 외부 기업을 배제하고 협동조합 등이 개발해 (임대)수익 등을 주민에게 귀속하겠다는 부분에서다.

도시 개발의 중심인 기업을 제쳐놓고 강남·강북 격차를 완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발연대인 1970년 이후 강남 개발은 동네살리기와는 달랐다. 허허벌판에 경부고속도로·올림픽대로와 한남대교 등 교통망을 새로 깔면서 한강변 공유수면을 매립하고, 개발제한구역 설정을 통해 택지를 몰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강남의 뼈대가 형성됐다. 한강변 고가 아파트들도 이때 들어섰다. 기업을 적극 참여시켜 ‘새 판’을 짜야 장기적으로 도시 모습이 바뀐다는 것이다.

일부 경전철의 재정사업 전환, 강북 지형을 감안한 경사형 모노레일 설치 등은 새 정책이긴 하다. 그러나 비강남권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높일 인프라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고밀도 개발과 기업에 호의적이지 않은 박 시장이 강북에서 시종일관 추진 중인 도로 축소·광장 확대가 도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나온다. 박 시장은 지난 한 달간 옥탑방 근황을 선거 유세하듯 외부에 일일이 알렸다. 차라리 각계각층과 강북 개발을 놓고 한 달간 ‘끝장 토론’을 벌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