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재판절차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14일 소환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이날 오전 김 전 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지난 6일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된 김 전 실장은 8일만에 다시 검찰에 불려갔다. 김 전 실장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찰의 조사실로 들어갔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2013년 말 당시 현직 대법관을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재판 진행 상황을 논의하고 청와대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회동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동에 배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당국자 여러 명의 진술을 통해서다.

김 전 실장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소송의 최종 결론을 최대한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대법원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를 방문해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징용소송 문제를 논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내용도 김 전 실장에게 물을 방침이다.

당시 청와대로서는 일본과의 외교관계 문제를 이유로 강제 징용 소송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재판 결과에 직접적 개입은 하지 않았더라도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사법부가 청와대의 이 같은 요구를 들어주고 반대 급부로 법관 해외파견 등에서 협조를 얻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절차 논의 자체가 직권남용죄 등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법원은 2012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으나 2013년 8∼9월 해당 기업들의 재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상태였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