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대법관이 일선 법원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에 앞서 활동한 대법원 산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이를 파악하고도 묵살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모 전 법원행정처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특조단 조사에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뜻에 따라 2015년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에서 재판을 맡았던 방모 부장판사(당시 전주지방법원 행정2부 재판장)에게 선고기일 연기를 요청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정당 소속 지방의원들의 지위를 박탈했고, 의원들은 이에 맞서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된 첫 재판이 2015년 9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국정감사 기간 등에 따른 정치권 공방을 우려해 법원행정처가 선고기일 연기를 직접 요청했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선고는 같은 해 11월로 연기됐다. 또 판결문엔 법원행정처의 의견에 따라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은 헌재가 아니라 법원 권한”이라고 명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헌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어려움을 겪자 헌재를 견제하기 위해 이 같은 문구를 넣은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법원행정처가 국회의원을 상대로 ‘입법 로비’를 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도 확인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에 따르면 2016년 법원행정처는 정치자금법 또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의원 10여 명을 상대로 양형 전망, 의원직 상실형인 벌금 100만원 선고를 피하기 위한 방어 전략 등을 담은 문건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