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관련 혐의에 대해 광범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으로부터 상당수 기각당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기각 사유를 자세히 밝히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무더기 영장기각에 역대급 '기각 사유' 공개한 檢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10일 “강제징용·위안부 소송 재판거래와 인사불이익 혐의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전날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에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다섯 차례에 걸쳐 30여 곳의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단 3곳의 영장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통상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5%를 넘어선다.

이번 압수수색은 크게 두 가지 혐의에 대해 이뤄졌다. 우선 강제징용과 위안부 민사소송을 놓고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이 혐의와 관련해서는 전·현직 심의관뿐 아니라 전·현직 주심 대법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자세하게 공개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통상 한두 줄 정도의 간단한 기각 사유만 공개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검찰 관계자는 “강제징용 관련해서는 전·현직 심의관들이 상관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따른 것일 뿐이라는 이유로, 사건 관련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연구관들은 사건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는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됐다”고 밝혔다. 전·현직 주심 대법관에 대해서는 재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각당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또 다른 압수수색 대상은 법관 인사불이익 관련 부분이다. 검찰에 따르면 법원은 해당 법관이 직접 자신이 통상적인 인사패턴에 어긋나는 인사불이익을 받았다고 진술하는 정도의 소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번에 기각 사유를 자세하게 공개함으로써 ‘여론’에 판단을 넘기는 모양새를 취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은 수사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청구 사유의 엄격성을 이렇게까지 따지지 않는다”며 “법원의 이중잣대”라고 꼬집었다.

법원 내부에서는 일반적인 사건과 다르게 사법부 독립 문제가 얽혀 있어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은 혐의에 대해 일단 털고보자는 식의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