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여부는 부정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었는지가 기준
피고인은 유출 사실 인정하면서도 연구개발 목적이었다는 주장으로 처벌 면해
업계 “기술 유출 사실만으로도 엄단해야… 지금 법원은 ‘솜방이’ 처벌”
[비즈앤로] (3) 삼성·LG 기술 유출 자인한 '산업스파이'는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았나

< ‘비즈앤로’는 경제계와 산업계에 의미있는 판결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한국경제신문 지식사회부 법조팀 기자들이 매주 한 건씩 기업 운영에 필요한 판결을 엄선해서 깊이있게 분석해드립니다. >

삼성과 LG에서 첨단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국계 검사장비 제조업체(오보텍코리아) 직원들이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검찰이 재판에 넘긴 지 약 6년만이다. 검찰은 이들 직원의 행위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며 기소했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죄를 묻지 않았다. ‘산업스파이’ 혐의는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 기술 유출은 사실이지만 연구 개발이 목적이었다는 점을 주장했던 게 주효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안모 오보텍코리아 과장 등의 상고심에서 기술유출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오보텍은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디스플레이 패널 검사장비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지난 2011년 11월부터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55인치 TV용 OLED 패널 실물 회로도 등 핵심 기술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 등으로 2012년 6월 기소됐다. 검찰은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고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오보텍코리아 직원들은 점검업무를 지원한다는 목적 아래 극비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했다. 검사장비 협력업체 직원 자격으로 각 공장 생산현장에 들어간 이들은 장비에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실물 회로도를 촬영하고 이 파일을 USB에 담았다. 이후 파일을 본사 등에 이메일로 전송했다.

재판에서는 기술유출의 목적이 구체적이고 부정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14조(산업기술의 유출 및 침해행위 금지)는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유출하거나 그 유출한 산업기술을 사용 또는 공개하거나 제3자가 사용하게 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제35조).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이 아니라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된다.

오보텍 측은 기술이 유출된 경로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했지만 그 목적이 ‘연구 개발’이었다고 주장했다. 삼성, LG의 제품을 더욱 무결하게 검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오보텍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이들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기에는 입증이 부족하다고 본 이유에서다. 하급심은 “삼성과 LG의 정보를 정리·취합한 행위는 제품 검수를 맡은 오보텍의 정당한 업무 방식이었다”며 사진을 찍고 조합한 행위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렇다면 취합을 넘어 기술을 밖으로 공유한 부분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재판부는 “정보 공유가 삼성과 LG로서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예견할 수 있었기에 관리를 하지 못한 삼성과 LG의 책임이 크다는 취지다. 이외에도 사건 발생 당시 오보텍이 문제의 자료보다 훨씬 더 핵심 기술에 가까운 자료를 삼성과 LG로부터 적법하게 제공받아서 보유하고 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종합해 봤을 때 “오보텍이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기업에 손해를 입힐 목적’을 갖고 정보를 공유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지었다.

산업계 관계자들은 기술 유출 혐의를 두고 바라보는 업계와 법조계의 ‘온도차’가 크다고 지적한다. 업계는 기술이 유출된 사실만으로도 엄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법원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기술유출 범죄는 2011년 이후 2016년까지 매년 400건 이상 기소되고 있지만 같은 기간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은 83명에 불과했다. 실형을 산 비율도 고작 35%(30명)였다. 대법원 양형 기준도 강하지 않아 법정 최고형(징역 15년)보다 낮은 징역 6년이 법정 최대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는 미국, 일본 등 기술 선진국이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자국 핵심 산업에 대한 기술 유출을 엄격히 감시하고 단속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미국의 경우 ‘경제스파이 방지법’을 수차례 개정한 끝에 최고 20년형에 처하고 최대 500만달러를 추징하는 등 기술유출범을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하고 있다.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도 가능하다.

이처럼 핵심 기술 탈취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적어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법 개정을 통해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반론도 있다. 특허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술유출 사건이 급증한다며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막상 재판에서는 그 실체적 진실이 당초 알려진 내용과는 크게 다른 경우가 많다”며 “재판부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지 못하면 유죄 판결을 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김명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사법연수원 37기)는 “기술유출 사건은 현장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점, 해당 기술이 실제로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 인과 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점, 같은 업종이어서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 점 등 때문에 입증이 쉽지 않은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며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보안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핵심 인력의 이직 제한을 걸어두는 등의 장치를 마련해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은 법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편이라 사내법무팀 등의 세밀한 대처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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