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의원 '강온양면 로비' 검토…지역구 현안과 맞거래 '흥정' 구상
친·인척 동원해 설득하는 방안도…상고법원안 발의 의원과 재판거래 의혹
朴 최측근 이정현 의원 통한 로비 시도…대통령-대법원장 접견 성사
'상고법원' 국회 전방위 로비 추진… "서기호 의원 고립시켜야"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거나 회유하는 방안을 검토한 정황이 드러났다.

31일 법원행정처가 추가 공개한 '거부권 행사 정국의 입법 환경 전망 및 대응방안 검토'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정의당 서기호 당시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야당 내에 서 의원의 의견을 동조하는 세력 확산을 방지해 서 의원을 고립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상고법원 도입 방안을 놓고 국회의 입법 논의가 한창이던 2015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 이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당시 서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압박과 유화' 전략을 번갈아 시도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행정처는 서 의원의 소송이 재판 중이었던 점을 문건에서 거론했다.

판사 출신인 서 의원은 자신을 법관 재임용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처분에 불복해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연임거부 결정 취소소송을 벌이던 때였다.

법원행정처는 이 소송의 1심 재판이 변론종결 상태인 점을 이용해 당시 서 의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문건에 적었다.

동시에 서 의원이 주장하는 대법원 구성 다양화 방안에 공감을 표시하거나, 대법원장의 인사권 제한을 위한 법원 자체 노력을 부각시켜 설득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서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이며 "임종헌 기조실장이 그 무렵 법사위 회의 때 제게 뜬금없이 '그 사건 재판을 취하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요구했다.

이제 와 보니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서 전 의원은 "현직 의원 재판에도 이렇게 버젓이 개입했는데 일반 국민 재판에는 오죽했겠느냐"며 자신의 재판도 특별법을 제정해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던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같은 친박계로 분류되는 정갑윤 의원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문건은 "친박계 초선 의원인 김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비박계인 이병석 의원보다는 친박계 중진으로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정갑윤 의원을 활용해 반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법원행정처가 이런 방안을 검토한 것은 당시 같은 당 소속이던 유승민 의원을 접촉한 결과, '김 의원이 친박 정권 실세 내지 법무부 장관의 영향권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압박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회유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현안에 협조하는 방안이 집중 검토됐다.

2015년 3월 작성된 '상고법원안 법사위 통과 전략 검토' 문건에 따르면 대구가 지역구인 당시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을 설득하는 방안으로 '노후화된 대구법원 청사이전 추진방안'이 검토됐다.

같은 시기 작성된 '법사위원 대응전략' 문건에서는 김진태 의원이 또다시 등장한다.

법원행정처는 김 의원의 지역구 현안이 '강원디자인센터 춘천 유치'라고 판단해 현직 대법관을 활용해 설득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검토했다.

또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을 설득할 방안으로는 '폐기물매립지 건립 예정에 대한 주민 강력 반발 현안'을 활용하는 방안이, 이한성 의원 설득방안으로는 ''2015년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성공 개최' 지역 현안을 활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의 경우에는 '지하철 신(新)안산선 조기 착공 및 노선 연장 추진' 현안을,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특허 관할 집중 법안 국회통과'를 설득에 활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상고법원 도입 자체를 지역구 현안으로 흥정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2014년 9월에 작성된 '법무비서관실과의 회식 관련' 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반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에 상고법원 지부를 두는 방안까지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친분이 있는 대법관과 현직 판사 등을 동원해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설득하는 전략도 논의됐다.

2015년 3월에 작성된 '법사위원 대응전략'문건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김진태 의원을 움직이기 위해 사촌매형 관계인 민일영 대법관과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한성·전해철 의원은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활용하고, 서기호 의원은 함께 근무한 전·현직 판사를 통해 접촉한다는 방안도 문건에 담겨 있다.

또 이 문건에는 상고법원 관련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홍일표 의원과 대화할 소재로 '대표발의 감사. 통과 시 법원이 늘 감사할 것이라는 점을 적절히 설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당시 홍 의원이 관련된 민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에서 '통과 시 법원이 늘 감사할 것'이라는 표현은 재판거래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법원행정처는 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현 의원을 통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방안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정현 의원 면담 주요 내용' 문건에 따르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은 2015년 6월 4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이 의원과 식사를 하면서 상고법원 도입 필요성을 적극 호소했다.

이 의원은 이 식사자리에서 당시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과 정호성 비서관에게 직접 전화해 양승태 대법원장의 박 대통령 접견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법원행정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주일 후인 2015년 6월 12일엔 기조실 심의관을 직접 이 의원 사무실로 보내 상고법원 도입 방안을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보고 후 이 의원이 '시의적절한 정책과제'로 청와대에 보고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문건에 적혀 있다.

이후 양 대법원장은 두 달 뒤인 8월 6일 박 대통령을 실제로 접견했고, 법원행정처는 접견에 앞서 재판거래 의혹 핵심문건인 'VIP보고서'를 작성해 양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