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배상금 대느라… 정부, 나라 빚 5000억 상환 연기 '사상 초유'
올 들어 국가배상소송 패소로 정부가 ‘혈세’를 들여 배상한 금액이 이미 6300여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까지 추가 배상해야 할 금액을 합치면 1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소송 규모만 6조~7조원 규모인 론스타, 엘리엇매니지먼트, 메이슨, 쉰들러 등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제기가 잇따라 정부는 ‘초비상’이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정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초까지 국가배상금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6337억원을 썼다. 배정된 국가배상금과 예비비로 3482억원, 잉여금으로 2854억원을 집행했다. 잉여금 계정에 있는 자금을 국가배상에 사용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정부는 또 국가배상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잉여금 계정에 있는 국가채무 상환 예산 8539억원 가운데 약 5000억원을 용도를 바꿔 배상금 재원으로 쓰기로 했다.

구로농지 사건이 화근

올해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배상금을 내게 된 것은 ‘구로농지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8674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올해 지급된 배상금만 6337억원이고 연말까지 최대 1조원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법조계에선 박근혜 정부 때 나왔어야 할 대법원 국가배상 판결이 한참 뒤 나온 것에 의혹을 두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재판 결과여서 대법원이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 후 4년6개월간 판결을 내리지 않으면서 배상금(4096억원)보다 더 많은 지연이자 4578억원이 ‘혈세’로 나가야 했다. 통상 항소심 이후 1년 안에 판결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박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재판을 미뤘다는 의심이 나올 만하다”고 말했다.
소송 배상금 대느라… 정부, 나라 빚 5000억 상환 연기 '사상 초유'
남아 있는 국가소송 사건 가운데 정부 배상 부담 가능성이 큰 것은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다. 봉은사는 정부로부터 793.4㎡(약 240평)의 토지를 돌려받기로 했지만 1971년 당시 공무원의 서류 조작으로 땅을 돌려받지 못했다. 봉은사는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4월 1심에서 승소했다. 대법원 판결에서 정부가 패소하면 유사 토지분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 론스타의 ISD에서도 한국 정부의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일부 패소할 경우에도 2조~3조원가량의 배상 부담이 발생한다. 엘리엇 등이 제기한 ISD가 잇따르면서 올해 한국은 세계 최대 ISD 피청구(약 6조6000억원) 국가가 됐다.

재난, 빚 상환용 예산을 배상금에 사용

정부는 보통 국가 총예산의 1% 이내를 예비비로 저장해 둔다. 갑작스러운 사건 및 재난에 따른 긴급구호와 복구, 국가안전보장활동 등에 대비한 ‘비상금’ 성격이다.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예비비가 긴급 투입됐다. 지난 4월 남북한 정상회담에 따른 판문점 평화의 집 개보수 비용, 만찬행사 등도 예비비에서 나갔다. 올해 정부 예비비는 3조원으로 이 가운데 재난, 환율 대응으로 책정된 1조8500억원의 목적예비비를 국가배상금으로도 쓸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지난해 예산을 쓰고 남은 정부 잉여금 10조원 가운데 8539억원은 국가 채무를 갚는 데 배정했다. 올해 정부 채무가 700조원에 달한 가운데 국고채와 외국환평형기금채 등을 갚아 이자로 빠져나가는 혈세를 줄이기 위해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말 법무부가 국가배상금액을 긴급하게 요청하자 8539억원 가운데 5000억원을 배정해줬다.
소송 배상금 대느라… 정부, 나라 빚 5000억 상환 연기 '사상 초유'
■'구로농지 사건'은

소송 배상금 대느라… 정부, 나라 빚 5000억 상환 연기 '사상 초유'
‘구로농지 사건’은 1961년 박정희 정부가 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서울 구로동 일대 땅 약 99만㎡를 국유지로 편입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토지를 보유한 농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자 검찰을 동원해 구타와 고문 등의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농민이 소송을 취하하거나 땅을 포기했다. 그러나 47년 뒤인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해 민사소송에 불법 개입한 사건”이라고 판단해 재심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다시 소송이 이어졌다. 30~40건의 관련 소송이 벌어졌고 대법원은 2017년 11월 첫 판결을 내리면서 원고 일부 승소를 확정했다. 2013년 5월 항소심 선고 후 4년6개월 만의 판결이다. 7월 현재까지 이와 관련해 24건의 확정판결이 나왔고 앞으로 10여 건의 판결이 남아 있다.

안대규/고윤상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