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사태 전환점…총무원장 퇴진 '초읽기'
설정스님 "마음 비웠다"… 설조스님 "지켜보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27일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을 찾아 "마음을 비웠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이날 오후 현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기자회견을 연 뒤 설조 스님 단식농성장을 찾아 이같이 말하며 "건강이 걱정되니 단식을 중단하시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에서 "종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조속히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즉각적인 퇴진 의사는 밝히지 않았으나 현재 종단 안팎 분위기를 고려하면 설정 총무원장은 결국 물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설정 스님의 설조 스님 단식장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설정 스님은 지난 10일 설조 스님에게 "한두 명 바뀐다고 달라질 종단이 아니지 않느냐"며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을 회복해 종단 변화를 위해 의견을 나누자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설정 스님은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에서 마련한 방안을 통해 종단 개혁에 나선다는 입장이었으나 보름여 만에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설정 스님은 이날 거취 결정과 관련해 "종헌종법 질서가 존중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종정 예하, 원로의원 스님, 교부본사주지스님, 중앙종회의원스님, 전국비구니회 스님 등 종단 주요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거취를 정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신뢰가 갈수록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상황을 목도했다"고 말했듯이 현재 상황에서는 총무원장직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도 결국 본인 스스로는 결단을 내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설조 스님은 설정 스님의 이날 행보에 대해 "마음을 비웠다니 다행"이라면서도 단식은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설조 스님은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어떤 뜻으로 했는가가 중요하다"며 "총무원장 스님의 이야기만으로 단식을 중단하기는 어려우며 앞으로 결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주변은 하루 종일 긴박하게 움직였다.

오전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설정 스님과 설조 스님을 만났다.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스님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총무원장 퇴진과 승려대회를 통한 종단 적폐 해소를 주장했다.

이들은 "현 총무원장 스님의 결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뒤에 숨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전 총무원장을 중심으로 한 적폐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라며 "개혁기구를 만들어 인적 청산을 하고 설조 스님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원행 스님, 법타 스님, 지성 스님 등 원로회의 의원스님 10명은 오후 늦게 조계종 3원장 퇴진, 원로회의 개최 등 종단위기 극복방안 제시, 설조스님 단식 중단촉구 등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비구니스님들은 총무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연일 발표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설정 스님 퇴진 이후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설정 스님이 물러나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총무원장을 새로 뽑는다고 해도 조계종의 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불교계 관계자는 "설정 스님 퇴진 이후 조계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중요하다"며 "외부 세력이 나서 종단을 뒤흔들고 내부에서는 차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진정한 개혁이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