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다음달 12일부터 5일간 ‘할랄푸드 페스티벌’을 여는 한국관광공사는 지난주부터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왜 대한민국 정부가 친난민 정책을 펴느냐”는 전화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슬람 시장으로 우리 경제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2016년부터 하는 행사라고 소개했지만 이슬람 단어만 보고 난민을 연상하는 것 같다”며 “화가 나 전화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난민 공포' 확산에 유탄 맞는 할랄기업들
◆“할랄푸드 유행하면 난민 온다” 주장

식품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불리면서 정부와 기업, 대학이 공들여 키워온 할랄푸드 시장이 ‘난민 공포’의 유탄을 맞고 있다. 할랄푸드를 생산해 수출하는 기업들을 둘러싸고는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IS(이슬람국가) 테러범에게 지원한다더라”, “난민 입국을 바라고 있다더라” 같은 악성 유언비어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작년 기준 300여 개 기업이 1000여 개 품목에 대해 할랄 인증을 받았다. 돼지껍데기에서 추출한 젤라틴 성분을 마시멜로에서 뺀 오리온의 할랄용 초코파이, 돼지고기 성분을 라면 스프에서 뺀 농심의 신라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이 할랄푸드 시장에 뛰어든 것은 시장 성장세가 가팔라서다. 한국할랄인증원은 세계 할랄푸드 시장이 2014년 1조2920억달러에서 2019년 2조5370억달러로 2배 이상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난민 입국을 반대하던 여론 중 일부가 ‘이슬람 혐오증’으로 바뀌면서 황당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 많은 것이 “의식이 있는 동물의 피를 빼서 죽이는 이슬람식 도축법 ‘다비하’는 이슬람만 할 수 있어서 할랄푸드가 유행하면 난민이 대거 입국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할랄푸드의 상당수가 김치, 과자, 식재료 등의 품목이라 기업으로선 생산라인 정도만 증설하면 된다. 고기를 취급해도 다비하식 도축은 의무가 아니다. 한국이슬람중앙회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전기충격 방식 도축법을 할랄로 공식 인정한다.

그런데도 대형 포털, 온라인 카페 등에는 ‘불매운동을 벌여야 할 회사들’이라면서 할랄 인증을 받은 기업들 이름이 올라오고 있다. 중동시장을 뚫자고 돈을 들여 할랄 인증을 받은 중소기업들은 회사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아예 문을 닫게 될까봐 걱정이다. 한 건강기능식품 회사의 권모 대표는 “수출국가 다변화를 위해서 KOTRA에서 하는 할랄시장 진출 설명회까지 들었는데 최근에 이슬람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분위기가 바뀌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할랄 메뉴 도입한 대학도 곤경

학생식당에 할랄 메뉴를 도입하고 무슬림 전용 기도실을 조성한 대학들도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국내 대학 중에선 한양대가 2013년 최초로 할랄푸드 식당을 개설했다. 이어 세종대, 이화여대, 선문대, 경희대 등이 할랄 식당이나 할랄 메뉴, 이슬람 전용 조리 장소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최근 내국인 학생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한 세종대 학생은 “이슬람 유학생들이 같은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난민 입국을 찬성하고 도와주지 않겠느냐”며 “왜 그들만을 위한 시설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 관계자는 “중국과 동남아 유학생 의존도가 높아 이슬람 유학생 유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슬람 유학생 사이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할랄식품

아랍어로 ‘허용된 음식’을 의미한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생산·가공해 이슬람교도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제조된 식품을 말한다.

조아란 기자 ar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