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 안양에 있는 한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 공장 앞에서 인근 연현초교 학부모 40여 명이 무릎을 꿇었다. 공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이들 학부모는 “지난해 11월 공장이 멈춘 뒤 아이들의 코피와 비염 증상이 사라졌다”며 “우리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읍소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이곳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이 검출되자 사용중지명령을 내렸고 회사 측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공장 재가동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아스콘 공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을 규제할 조항이 없어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지키며 운영해도 오염 심각

'규제 사각' 아스콘 공장… '발암물질 배출' 논란
이곳 공장에서는 재건축·재개발 등에서 나오는 폐아스콘을 녹여 도로포장 등에 사용하는 아스팔트를 뽑아내고 남은 재료를 골재와 섞어 건설 자재로 재활용해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량의 오염 물질이 배출된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지난해 시행한 대기오염도 검사 결과 공장 매연에서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의 한 종류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 1급 발암물질이다. 이 때문에 미리 허가받지 않은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 ‘무허가 시설’로 분류돼 작년 11월 사용중지명령을 받고 가동을 멈췄다.

회사 측은 이후 공장 재가동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달 9일 경기도에 관련 신고를 마치고 11일에는 안양시 측에 악취배출신고 변경신고를 완료했다. 회사 관계자는 “아스콘 공장은 미세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세 가지 배출물질만 신고하면 인가가 이뤄진다”며 “작년 경기도 검사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고 해 이를 걸러내는 집진시설도 새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안전성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 주민은 “벤조피렌 외에 유해물질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밤에도 자는 도중 타이어가 타는 듯한 악취 때문에 잠을 깬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암과 호흡기 질환 등도 호소하고 있다. 올초 연현마을 주민들이 자체 조사한 결과 전체 주민 중 암환자 비율은 8.2%였다. 전국 암 유병률의 두 배가 넘는다. 지금까지는 공장 배출물질과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

◆유해물질 기준 마련 시급

아스콘 공장으로 갈등을 빚는 지역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7년간 아스콘 공장 인근에서 근무한 경찰관 중 4명이 암에 걸려 사망한 경기 의왕과 주민들이 암과 호흡기 질환 등을 호소하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PAHs 등 유해물질 16종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해왔으나 9년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우선 벤조피렌 등 8개 물질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거쳐 입법 예고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