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고기압, 장마전선 짓눌러… 1994년 最長 폭염일수 넘기나
폭염 '비상' 왜 이리 덥나

폭염이 절정에 달한 20일,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뜻에서 ‘대프리카’란 별명을 얻은 대구는 낮 최고기온이 38.5도까지 치솟는 등 올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여름 무더위에 익숙한 대구시민들이지만 이날만큼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도서관 미술관 문화센터 등 냉방이 잘되는 곳을 찾아 더위를 피했다.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정모씨는 “매년 겪는 폭염이어서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얼굴이 따가워 밖에 나다니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모든 내륙에 폭염특보

한반도 고기압, 장마전선 짓눌러… 1994년 最長 폭염일수 넘기나
기상청은 20일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전북 등 전국 모든 내륙지방에 폭염특보(주의보·경보)를 내렸다. 폭염주의보는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측될 때 발령한다. 대구는 이날 한낮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했다. 기상청은 이날 “안정된 기단 내에서 비가 내리기 어려운 조건이 지속돼 폭염은 7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주말부터는 10호 태풍 ‘암필’이 대만에서 중국 상하이 부근으로 이동하면서 태풍과 동반한 뜨거운 수증기가 한반도로 유입돼 불쾌지수가 상승하고 열대야 발생 지역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때 이른 폭염이 나타난 것은 장마전선이 일찍 소멸한 영향이 크다. 제주 남해상에 머물던 장마전선은 지난달 19일부터 북상과 남하를 거듭하다 이달 들어 북한 쪽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11일 소멸했다. 올 장마로 인한 전국 강수일수는 10.5일, 강수량은 283㎜로 집계됐다. 1981년 이후 30년간 평년 강수일수(17.1일)와 평균 강수량(356.1㎜)을 한참 밑돌았다. 지역별로 장마전선이 지속된 기간(중부 16일·남부 14일·제주 21일)을 보면 평년 평균인 32일보다 최대 18일가량 짧다.

장마가 이렇게 짧아진 것은 한반도 위아래에서 반대 방향으로 확장한 두 개의 고기압에 장마전선이 짓눌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부터 대륙에서 발원한 티베트고기압이 평년에 비해 이례적으로 강해지면서 한반도 주변 대기 상층이 전반적으로 달아올랐다. 여기에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보다 세력을 크게 확장하면서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빠르게 떠밀려갔다.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조짐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열대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면서 상승기류(대류활동)가 활발해졌고, 이 기류가 한반도 남쪽 해상에서 하강기류(대류억제)로 전환되면서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훨씬 강해졌다. 이 같은 추세라면 폭염일수가 관측 이후 최대치인 1994년의 31.1일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기록될 때 폭염이라고 지칭한다. 중부·남부·제주지방에서 지정한 전국 45개 표본지점에서 33도 이상 기록된 날을 모두 합해 평균한 일수가 폭염일수다. 폭염일수 2·3위 역시 최근에 기록됐다. 2016년(22.4일), 2013년(18.5일) 등 2010년대 들어 폭염일수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한반도 고기압, 장마전선 짓눌러… 1994년 最長 폭염일수 넘기나
재해 수준의 무더위에 정부도 ‘비상’

이처럼 계속되는 폭염으로 일사병, 열사병 등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16일 오후 3시 세종시의 한 보도블록 교체작업 현장에서 일하던 A씨(39)가 열사병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다. 하루 전인 15일 경남 창원에서는 밭에서 일하던 할머니(84)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젖소 사육농가에서는 천장에 대형 선풍기를 설치하고 안개 분무 시설을 가동해 축사 내부 온도를 떨어뜨리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번 폭염으로 17일까지 닭 75만3191마리를 비롯해 오리, 돼지 등 가축 79만 마리가 폐사하고 42억원 규모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생육온도가 20도 내외인 인삼 농가에서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경북도농업기술원 풍기인삼연구소 관계자는 “인삼은 30도 이상 되면 광합성률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최근 현장조사를 한 결과 인삼 잎의 온도가 28~39도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도로와 철로 등 교통기반시설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16일 서해안고속도로에서는 도로 일부가 뜨거운 열기 때문에 40cm가량 솟아올라 이곳을 지나던 차량 4대가 파손되고 운전자 등 5명이 다쳤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는 초·중·고교의 등하교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방침이다. 국토교통부는 고속철도 레일 온도를 점검해 55도 이상이면 서행운전, 64도 이상이면 운행중지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대구=오경묵/이해성/조아란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