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회로TV(CCTV) 보자고 해봤자 원장이 동의하겠어요?”

[현장에서] '어린이집 참사' 줄 잇는데… 손 놓은 정부·국회
서울 노원구에 살고 있는 남모씨(31)는 최근 어린이집에서 두 살짜리 딸이 종아리에 시퍼런 멍이 들어 돌아왔지만 원장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원장은 “혼자 놀다가 넘어져 책상 모서리에 부딪친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CCTV를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현행법상 원장 동의가 필요했다. 학대를 목격한 제3자의 진술이 있어야 경찰에 신고라도 할 텐데 원장 영향력 아래 있는 보육교사가 솔직히 증언해 줄 리 만무했다.

정부는 2015년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아이를 보내는 부모 마음은 편치 않다. CCTV의 사고 예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8일 서울 화곡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생후 11개월 된 남자 아기가 사망했다. 가해자로는 어린이집 교사인 김모씨(59)가 지목됐다. 그가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씌우고 온몸으로 짓누르는 모습이 어린이집 CCTV에 포착됐다. 김씨는 “아기가 잠을 자지 않아 그랬다”고 진술했다.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다. 올 1월 대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도 “낮잠을 안 잔다”며 세 살배기 아이를 때리고 학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작년 인천에서는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안 잔다는 이유로 아동을 때리고 학대하는 어린이집 교사 모습이 CCTV에 찍혀 국민의 공분을 샀다.

데자뷔는 17일 경기 동두천에서도 반복됐다. 이날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네 살배기 여아가 갇혀 일곱 시간 방치됐다가 결국 사망했다. 인솔교사와 운전기사는 차 안에서 아이가 잠든 것을 모른 채 등원하지 않은 줄 착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일과 거의 비슷하다. 당시에도 네 살배기 남자 아이가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갇혀 방치됐다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아이는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휴대폰 앱(응용프로그램) 등으로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CCTV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차량 맨 뒷좌석에 있는 벨을 눌러야만 시동을 끌 수 있도록 해 좌석 점검을 유도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 제도를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차량 개조와 연구용역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제도를 도입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는 안전벨트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과 미취학 아동을 차량에 방치하면 운전자와 동승자를 처벌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어른들이 손 놓고 있는 동안 언제 다시 어린아이들이 희생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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