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범죄가 피해자의 외모나 옷차림 등 개인적 특성 보다 장소나 상황 등의 변수가 크게 작용해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형사정책연구 여름호’에서 박형민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자의 피해자 선택’이라는 논문에서 “성범죄자가 특정 피해자를 미리 선택했다기보다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해 성범죄를 시도한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2회 이상 범죄를 저지른 성폭행 강력범 22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실시해 범죄자들의 피해자 선택 변수를 연구했다. 그는 “대다수 성폭행 피해의 경우 피해자에 대해 매력을 느꼈다기 보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피해자를 선택한 근거가 됐다”며 “특히 음주 과정에서 피해자의 경계심을 감소시킨 후 범행의 기회를 만든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거주지에 침입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 피해자의 특성보다는 건물의 특성이나 피해 여성 이외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범죄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길에서 납치하거나 바로 공격하는 경우 역시 피해자의 외모나 옷차림 보다는 어두운 골목, 늦은 시간, 감시자 부재, 열린 문 등 상황에 따라 범행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컸다. 그는 “피해자의 특성이 고려되는 경우에도 외모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지 여부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 범죄자들이 피해자를 오래전부터 미리 선정하고 범죄를 계획한다는 전통적인 범죄 이론은 맞지 않다”며 “이는 성폭력 예방 대책을 수립 할 때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범죄 유발이 잦은 장소가 따로 있다”며 “여성 인구가 많은 곳에는 ‘셉테드(CPTED·범죄예방환경설계)’ 개념을 활용해 건물의 구조와 거리의 조명, 조경 등만 개선해도 성범죄 발생율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제안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