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소득이 높거나 상습적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범칙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2009년 이후 반대 의견에 번번이 가로막혔던 교통범칙금 차등부과제가 이번엔 시행될지 주목된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경찰은 ‘위반자 특성에 따른 교통범칙금·과태료 차등부과 방안’ 용역을 발주했다. 현재 교통범칙금 부과 시스템이 제재 효과가 미미하고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서다. 경찰청 관계자는 “소득과 재산, 상습성 등 위반자 특성에 따라 범칙금을 차등 부과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해외 사례와 법률상 문제점, 국내 적용 가능 모델 등을 검토해 정책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일수범칙금 도입안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해 상임위원회에 올라 있다. 일수범칙금 제도는 ‘하루 평균 순수입’에 따라 벌금을 정하는 제도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유럽 몇몇 국가에서 시행 중이다. 핀란드 등에서는 교통범칙금으로 1억원을 내는 사례도 종종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모두가 똑같은 범칙금을 낼 경우 저소득자에게는 과도한 처벌이 될 수 있지만 고소득자에겐 처벌 효과가 없다”며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수범칙금 제도 등 차등부과제는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추진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나서 “생계형 픽업 차량과 벤츠의 위반 범칙금이 같은데, 그것을 공정사회라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지만 국회의 벽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당시 국회입법조사처가 “소득이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 시행 시 소득이 드러나는 봉급생활자만 불리해진다”고 반대한 영향이 컸다. 지금은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료 납부 내역 등 소득을 계측하는 장치가 선진화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소득에 따라 처벌이 달라지는 것은 ‘부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기석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죄와 상관없는 정당한 재산이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주된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직권적이고 국가권위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관계기관의 업무량이 늘어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현재 20만원 이하 범칙금은 행정관청이 집행하지만, 일수범칙금제가 도입돼 20만원이 넘는 벌금이 부과되면 법원이 집행해야 한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