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트인 경영계는 환영…노동계 "노동시간 단축 후퇴" 반발
주 52시간제 위반 '시정기간 6개월'… "시행 사실상 내년으로"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반하는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가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주기로 함에 따라 사실상 주 52시간제가 내년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반감시킨 데 이어 노동시간 단축을 사실상 유예함으로써 양대 노동정책에서 후퇴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부는 다음 달 1일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감독이나 진정 등으로 노동시간 위반이 확인될 경우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할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현행 노동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상 7일(한 번 연장하면 14일)인 노동시간 위반 시정 기간을 대폭 늘린 것으로, 기업에 주 52시간제 도입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한 조치다.

노동부의 결정은 이날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당·정·청 회의는 올해 말까지 6개월 동안 노동시간 단축의 '계도 기간'을 두기로 했다.

사실상 '처벌 유예 기간'인 셈이다.

노동부의 결정으로 당장 다음 달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기업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특히,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에 어려움을 겪어온 중소·중견기업 사업주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노동시간 단축의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이행하려면 유연근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노동부의 이번 결정은 주 52시간제 위반 기업에 적어도 6개월 동안 사실상 '면죄부'를 줌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의 실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계도 기간을 두는 게 법 시행 자체를 유예하는 것은 아니며 집행을 보다 유연하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시정 기간을 무조건 6개월 부여한다는 말이 아니다"라며 "근로감독관이 현장에서 (노동시간 단축 이행에) 통상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시정 기간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6개월 한도 안에서 기업 사정에 따라 짧은 시정 기간을 부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근로감독관은 신규 인력 채용, 설비 효율화, 유연근로제 도입 등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기업 사정에 맞는 대책에 따라 시정 기간을 달리 부여할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정부가 양대 노동정책인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서 경영계 요구를 수용해 기존 입장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노동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재계 반발로 노동시간 단축에서 사실상 물러선 것"이라며 "개별 사업장에서 단체교섭 등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철저히 시행하도록 산하 조직에 지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섬에 따라 개별 사업장에서는 이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업주가 당장 노동시간 단축을 이행하도록 압박하는 유일한 방안이 노동시간 위반에 대한 고소·고발밖에 없어 고소·고발이 잇따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부가 노동시간 위반에 대해 시정 기간을 주는 것은 근로감독이나 진정 등으로 법 위반을 적발한 경우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는 법 위반이 발견되면 사법처리해야 한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사회적 대화 기구에 불참하는 등 반발하는 와중에 정부가 또 경영계의 요구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을 사실상 늦춤에 따라 노·정관계가 더욱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