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갑질'에 기업들 몸살… 공정위는 '나몰라라'
이달 초 서울의 한 특급호텔 마케팅담당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한 ‘1인 창작자’의 연락을 받았다. 호텔에서 새로 출시한 빙수 후기 영상을 올려줄 테니 제품을 협찬하고 대가로 300만원을 달라는 요구였다. 제품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마케팅비는 못 준다고 답하니 “싫으면 말라”며 연락을 끊었다. 호텔 관계자는 “너무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모습에 당황했다”고 말했다.

협찬광고 표시없이 영상 올려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1인 창작자들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영향력을 이용해 불법적인 ‘갑질’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정 제품에 대한 홍보성 발언과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넘어 경쟁사 제품을 교묘하게 깎아내리는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다.

상품 후기를 가장해 험담을 늘어놓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몇 달 전 ‘A브랜드 화장품이 경쟁사인 B브랜드 화장품보다 좋다’는 후기가 줄지어 유튜브에 올라왔다. B브랜드 관계자는 “같은 시기에 비슷한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는 게 수상해 수소문해 보니 A브랜드가 1인 창작자들에게 협찬비를 주고 우리 제품을 폄훼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돈을 받고 올린 왜곡된 내용이지만 ‘광고 영상’이라는 표시가 없어 소비자들은 속아넘어가기 십상”이라고 우려했다.
'유튜버 갑질'에 기업들 몸살… 공정위는 '나몰라라'
약점을 잡은 뒤 돈을 요구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한 유명 유튜버는 “A기업의 화장품 도구 품질이 너무 안 좋아 쓸 수 없다”며 쓰레기통에 버리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뒤 해당 기업에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업 측에서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자신의 소속사를 통해 대가로 2000만원을 제시한 사실이 알려져 큰 논란을 불렀다.

‘블로거 갑질’에서 ‘유튜버 갑질’로

국내 1인 미디어(MCN) 광고시장은 작년 56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동영상에 따라붙는 영상광고만 집계한 것이다. 바이럴광고, 간접광고 등을 포함하면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넘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상파 TV 광고시장(1조5223억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1인 창작자의 몸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 A급 창작자의 협찬비는 영상 한 편에 4000만원 선부터 시작한다는 게 디지털 마케팅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1인 창작자의 협찬비도 300만~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형 MCN 소속사들이 계약을 맺고 있는 창작자들의 주요 콘텐츠와 기본 가격정보를 표로 만들어 영업하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한 대기업 마케팅부서 관계자는 “1인 창작자들의 무리한 행태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협찬 시 지인과 가족이 사용할 제품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한 협찬 영상은 중립적인 이미지로 포장된다. 유튜버 등 1인 창작자(크리에이터)들은 ‘브랜디드 콘텐츠’라는 명목으로 기업에서 마케팅비를 지원받아 바이럴·간접광고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광고’ ‘협찬’ 등의 사실은 영상 어디에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시할 때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최근 한 유명 유튜버는 기업 협찬을 받아 프랑스 파리에 간 영상을 올리면서 ‘콜라보(협업) 영상’이라고 했다.

공정위 “제재방안 없다”

눈속임 식의 협찬 영상이 광고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한 디지털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협찬 영상을 많이 올리면 시청자들이 비난할까봐 창작자들은 지원받은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린다”며 “결국 광고를 진짜로 착각하게 만드는 반칙이 횡행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악의적인 협찬비와 사례금 요구 등 1인 창작자의 ‘갑질’이 인터넷에 넘치지만 감시 역할을 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유튜브 등에 올리는 영상은 공정거래법상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 적용 대상이다.

공정위는 ‘블로거 갑질’ 논란이 불거진 2014년 이 지침을 개정하면서 협찬을 받아 온라인에 올리는 영상과 게시물은 ‘광고’라고 별도로 표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영상 사이트 규제에 손을 놓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속 필요성은 있지만 아직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어긴 영상을 적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