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는 올해 61세.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명사로 불리는 ‘58년 개띠’다. 하지만 A씨는 지금도 현역 나이트클럽 웨이터다. 동년배들이 벌써 5~6년 전부터 은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20~30대 후배들과 경쟁하며 나이트클럽 플로어를 누빈다.

1979년 호텔 벨보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캬바레 웨이터 10년, 나이트클럽 웨이터 26년 등 40년 가까운 생활을 웨이터로 지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웨이터 간에 치열할 수 밖에 없다. 31일 만난 그는 자신의 생존 비결로 성실과 자기 관리를 꼽았다.

A씨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를 10시간동안 걸어다니는 직업으로 정의했다. “금요일의 경우 저녁 7시부터 고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해 클럽이 문을 닫는 새벽 5시까지 손님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웨이터는 홀과 룸을 오가며 딱딱한 클럽 플로어를 계속 걸어야 합니다.”

그런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 관리다. 하루에도 수만보를 걷다 보면 일찍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기는 웨이터가 많다. 새벽 5시에 퇴근하는 A씨는 늦어도 그날 오전 10시30분에는 일어나 휘트니스센터로 향한다. 2005년을 전후해 50대 후반에 들어선 선배들이 대거 퇴출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최소 3시간은 휘트니스센터에서 지내며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한다. 그는 “웨이터는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이라며 “배가 나오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웨이터가 그날 밤을 책임지길 원하는 손님은 없다”고 말했다.

고객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도 장수의 비결이다. 그는 나이트클럽이 문을 여는 날이면 오후 4시 출근해 고객들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10년간 나이트클럽에 발걸음을 끊은 고객이라도 수년에 한번씩은 연락해 안부를 묻는다. “한 번 놀러오라”는 말은 금물이다. “인연을 이어가다 기회가 되면 들릴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지 노골적으로 ‘영업’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면 수신차단되기 쉽상”이라는 설명이다. 요즘 근황과 안부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좋은 글귀가 있으면 모바일 메신저로 보내준다.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는 저녁 9시까지 시간이 날때마다 연락을 돌린다. 이같은 고객 관리가 하루 3시간에 이를 때도 있다.

술 판매가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나이트클럽이지만 A씨는 여기서 절대 술을 마시는 법이 없다. 일이 끝나고 술 한잔 하고 싶더라도 주변의 다른 술집을 찾아가 술잔을 기울인다. “영업장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술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일하는 중간에 몸과 마음이 풀어지게 마련입니다. 실수를 하게 되고 손님들에게 무례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권하는 술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고객들도 A씨에겐 술을 권하지 않는다.

이같은 자기관리와 성실성을 바탕으로 나이트클럽 웨이터의 최대 과제인 ‘부킹(남자 손님과 여자 손님을 이어주는 것)’에도 최선을 다한다. 고객들의 취향을 하나하나 파악해 거기에 맞는 사람과 짝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A씨는 “웨이터가 요령 부리기 시작하면 고객이 먼저 눈치챌 수밖에 없다”며 “고객이 염두에 두는 부킹 횟수를 채우려면 홀과 룸 사이를 한번이라도 더 걸어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일을 하며 가장 긴장되는 것도 이 순간이다. 고객들의 남녀 성비가 지나치게 안맞는 날이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식은땀이 난다.

꾸준한 노력 때문인지 A씨는 해당 업계에서 유명하다. 1992년 모 나이트클럽에서 일할 때 전체 테이블 78개 중 51개를 자신의 고객으로 채운 것은 지금도 업계에 회자된다. 웨이터 17명이 일하는 나이트 클럽에서 그날 손님의 3분의 2 가량을 혼자 힘으로 데려온 것이다.

직업인으로서 성공하며 남부럽지 않은 돈도 벌었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다. 직업을 들은 여성들이 교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30대 중반에야 결혼에 성공했다. 올해 26살인 아들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진짜 직업을 밝히지 못했다. A씨는 “아들도 지금은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한다”며 웃었다.

재미있는 점은 나이트 클럽 웨이터들이 20년 전부터 관련 업종의 쇠퇴를 예견했다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대형 유흥업소가 발을 붙이기 힘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이란다. 사회가 투명해져 유흥에 쓸 돈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휴식 시간을 가정에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유흥업소도 내리막을 걸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A씨는 “예상보다 쇠퇴 시점이 빨리 온 것은 사실”이라며 씁쓸해 했다.

경력 40년의 웨이터가 보는 나이트클럽 부킹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보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A씨는 “결국 경험을 많이 할수록 숙련도가 올라간다는 교훈은 나이트클럽에서도 어김없이 통한다”며 “더 많이 온 사람이 부킹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많이 오지 않고도 이성에게 인기를 끄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풍기는 사람의 인품이 훌륭하면 이성들도 금방 알아차립니다. 말을 잘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너무 노는 듯한 인상을 주면 오히려 꺼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결국 사람 보는 눈은 어디서나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제 막 환갑을 지나는 A씨는 일흔까지 지금 일을 계속하는 것이 목표다. 전성기 때에 비해 수입은 줄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일을 하고 고객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좋아서다. 그는 “몸 상태도 아직 괜찮고 고객들의 응원도 많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