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 다니는 박훈 씨(32)는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소개팅 앱(응용프로그램)에 가입하려다 실패했다. 앱에서 시행하는 인증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가입 신청서가 반려됐다. 박씨는 “명함을 찍어 보냈는데 대기업 직원이 아니라 안 받아준 것 같다”며 “취업 ‘스펙’을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소개팅 앱 가입용 스펙도 쌓아야 할 판”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강남 거주·SKY 아니면 가입 안 된다는데… 미혼 남녀 북적
◆강남 ‘아파트’ 거주자만 가입 가능

2030 미혼 남녀에게 스마트폰 소개팅 앱을 통한 이성과의 만남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맞선이나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결혼정보회사와 달리 큰 부담 없이 이상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가입비 없이 커피 한 잔 값(4000~5000원)에 상대 프로필을 열람하고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소개팅 앱 중에서도 회원들의 직업과 학교, 경제력 등을 엄선하는 이른바 ‘스펙형’이 인기 상한가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가입에 실패한 후일담이 줄을 잇는다. 남성 회원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서울 강남 거주, 하다못해 수입차라도 타야 가입할 수 있다.

올 3월 등장한 ‘골드스푼’은 강남권 거주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남성만 회원으로 받는다. 강남권이라도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살면 회원 거절이다. ‘메이저’라는 앱은 자체 선정한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 재직자만 가입할 수 있다.

학벌로 가입자를 거르는 앱도 문전성시다. 2013년 출시된 서울대 동문 전용 ‘스누매치’ 회원은 1만5000명에 달한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나 의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 남성만 받는 ‘스카이피플’에도 14만 명이 등록돼 있다. 최호승 스카이피플 대표는 “하루 평균 1500쌍 정도의 매칭이 이뤄진다”며 “결혼 소식을 직접 알려오는 커플만 한 해 50~80쌍”이라고 전했다.

◆남자는 ‘스펙’, 여자는 ‘외모’… 비판도

이들 앱은 가입 신청 후 인증까지 길게는 2~3일 걸린다. 속칭 ‘물 관리’를 위해 회원 관리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인증심사팀을 두고 명함과 전문직 면허증, 재직증명서 등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검증하는 식이다. 자동차등록증, 임대계약서, 등기,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한 앱 운영자는 “인증에서 떨어져 재수, 삼수하는 신청자도 흔하다”며 “왜 탈락이냐며 항의 전화가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건으로 사랑과 결혼에 진입 장벽을 치느냐는 지적이 만만찮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본주의와 정보화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또 다른 계급사회를 만들어 사회적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시대착오적인 성차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몇몇 앱이 여성 회원의 가입 조건을 ‘프로필 사진 평가 점수 몇 점 이상’ 등 외모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다.

청춘남녀가 원하는 것을 기술로 구현한 서비스라는 게 업계의 해명이다. 김영준 골드스푼 대표는 “앱을 통한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회원이 많다”며 “미혼 남녀들의 현실적이고 솔직한 욕구를 실현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