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에는 31일 자신이 ‘재판 거래’의 희생자라는 사람들과 관련 시민단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29일 KTX 해고 노동자들이 대법정을 무단 일시 점거한 이후 이어지는 파장이다. 이들은 법적 근거가 없는 ‘법원 직권 재심’ 등의 요구까지 쏟아냈다.

이들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실제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는 재판 거래의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팩트체크] KTX 승무원·전교조·통진당 판결 못 믿겠다는데…
◆‘국정운영 뒷받침 노력’ 문구의 뜻은

2015년 7월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가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 문건은 대법원 판결 중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 방침에 부합할 만한 것들을 모아놓은 내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담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과거사 정립·자유민주주의 수호·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4대 부문 개혁 중 노동과 개혁 부문 등의 주요 판결을 담았다.

KTX 해고 노동자 사건에 대해서는 ‘공공부문 민영화와 관련한 여러 쟁점이 관계된 사안에서 결국 한국철도공사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인정’이라고 적는 식이다. 옛 통합진보당원들이 나서 석방을 요구하고 있는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폭동과 내란을 선동한 이석기 전 의원에게 내란선동죄로 중형을 선고’라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었다. 다른 사건에도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없다.

◆“재판 거래는 불가능”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는 문구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 재판 거래를 했다는 고백이라는 게 시위대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있던 재판 결과를 설명하고 홍보하려는 수준이지 이를 ‘불공정 재판’의 근거로 볼 수 없다는 게 상당수 고위법관의 반론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도 재판 거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대법관 출신 A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대법관에게 특정 재판을 언급하는 자체가 구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행정처 판사가 대법관을 만나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안 해봐서 잘 모르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법관 출신 B변호사는 “문건 자체를 만든 행정처의 문제를 갖고 김 대법원장은 마치 지난 시절 대법관들이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며 “대법원장답게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