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시행회사 등 부동산 매매업자가 보유한 땅은 실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보유 기간과 상관없이 처음 5년은 업무용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토지를 보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출 이자를 회사 운영비로 인정해 그만큼 법인세 부과 대상을 줄여주는 게 맞다는 취지다. 대법원 판결은 항소심을 완전히 뒤엎었다. 항소심은 부동산 매매업자라도 땅을 사서 5년 뒤에 매입했을 때와 같은 상태로 되팔았다면 보유기간 전체를 비업무용으로 봤다. 이번 재판으로 주택이 부족한 시기가 왔을 때 신규 아파트를 적기에 공급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파트 시행사 등 주택개발업체의 주택용지 보유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Law & Biz] 부영은 어떻게 '법인세 173억'을 안낼 수 있었을까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1일 건설업체 부영이 남대문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부영이 193만7509㎡의 토지를 갖고 있으면서 부담한 이자 일부를 업무에 필수적인 비용으로 처리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대법원 결정으로 부영은 173억여원의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부영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취득한 해당 토지를 2009년 부영주택에 이전했다. 부영주택은 부영이 2009년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주택건설사업을 맡기기 위해 분리한 회사다. 부영은 땅을 넘기고 법인세를 신고할 때 전체 영업이익에서 각각의 토지에 쓰인 최초 5년간의 대출 이자를 빼고 계산했다. 법인세 법령은 기업이 부동산을 구입한 뒤 5년 안에 당초 목적대로 땅을 쓰지 않으면 업무와 무관한 자산으로 본다. 토지 구입에 따른 대출 이자에 대해 아무런 세제 혜택이 없는 것이다. 다만 시행령 제49조 1항에서는 부동산 매매업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주고 있다. 부영은 이를 근거로 세금을 아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2년 남대문세무서는 173억3159만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감사원이 서울지방국세청을 업무 감사하면서 보유기간 전체를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보는 게 맞다고 지적해서다. 1심에서는 부영이 이겼지만 2심(2014년)은 남대문세무서가 이겼다. 2심 재판부는 부영이 부영주택에 땅을 팔기 전까지 업무와 관련해 사용한 사실이 없다며 보유기간 모두가 비업무용이라고 해석했다.

2심 판결이 나오자 시행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5년 안에 착공하지 못하면 세금이 급격히 늘어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땅을 매입했다가 사업성을 이유로 아파트 분양을 미룬 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택지를 매입하면서 연 5% 이자로 100억원을 빌린 A사를 가정해보자. 이 회사가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8년째에 매각했을 경우 이번 대법원 판결로는 최근 3년치만 세금을 내면 된다. 하지만 2심 판결에 따르면 최초 5년치에 대해 원래 내야 할 세금(법인세율 22% 적용) 5억5000만원뿐만 아니라 가산세까지 포함해 7억7000만원을 더 물어야 했다. 부영의 소송대리를 주도한 법무법인 화우 김용택 변호사는 “항소심의 판단은 부동산 매매업자가 땅을 사고파는 행위를 업무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갖고 있었다”며 “이번 판결로 주택 공급이 감소할 요인이 하나 줄었다”고 설명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