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대형 법무법인(로펌)에서 일하는 외국 변호사가 19개국 500명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 변호사는 아니고 다른 나라 변호사 자격만 가진 사람들이다. 10대 로펌 전체 변호사 3000여 명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5%에 달한다. 법률 시장 개방 속도가 빨라진 데다 국내외 기업의 진출입이 늘어난 게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대형 로펌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전략도 영향을 미쳤다. 외국 변호사를 직접 고용하는 기업도 늘어나면서 외국 변호사의 역할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aw & Biz] 외국 변호사 500명 육박… 美·中·베트남 변호사 '상한가'
김앤장 외국 변호사 10년 새 두 배로

22일 한국경제신문이 10대 로펌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들 로펌에 소속된 외국 변호사는 492명으로 집계됐다. 외국 변호사가 가장 많은 곳은 로펌업계 1위 김앤장이다. 176명의 외국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10년 전 84명에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광장이 97명으로 두 번째로 많고 태평양(59명) 율촌(55명) 세종(42명) 화우(36명) 지평(14명) 등이 뒤를 이었다. 바른과 충정 등도 5명 이상의 외국 변호사를 보유하고 있다.

로펌의 외국 변호사는 주로 한국 변호사와 팀을 이뤄 일한다. 해당국 법률 지식과 언어 능력을 활용해 주로 기업 컨설팅을 담당한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해외로 나가는 한국 기업과 한국에서 사업하려는 외국 기업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관련 법률 서비스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추세”라며 “기업 인수합병(M&A)을 비롯한 각종 계약과 특허권 관련 분쟁 등에서 외국 변호사들이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변호사들은 국내외 사정에 모두 이해가 밝아 해외 유명 로펌의 현지 변호사보다 좋은 성과를 낸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광장의 정기창 미국 변호사는 한·미 간 세계무역기구(WTO) 세탁기 분쟁과 한·일 간 위생검역 분쟁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며 두각을 보이고 있다.

양민웅 태평양 미국 변호사는 이베이의 G마켓 인수, 동부팜한농의 몬산토코리아 종자사업 인수 등을 성사시키며 외국 변호사의 위상을 높였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예전에는 해외에서 재판이 이뤄지면 무조건 현지 로펌을 찾았는데 국내 로펌의 사건 해결 능력이 조금씩 인정받으면서 처음부터 국내 로펌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외국 변호사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美 변호사 79%…중국 베트남이 뒤이어

외국 변호사의 ‘자격증 국적’은 미국이 압도적이다. 전체 외국 변호사의 79%인 391명이 미국 변호사다. 한국의 대미 교역량이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데다 국제 법률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반영된 결과다. 중국 변호사는 42명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중심의 외국 변호사 고용 행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동남아뿐만 아니라 러시아 변호사까지 늘어나면서다.

한국 기업들에 베트남이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베트남 변호사는 18명으로 증가했다. 로펌 관계자는 “베트남 변호사 영입 현상이 앞으로 더 뚜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얀마 변호사는 최근 4명으로 늘어났다. 중앙아시아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과 직접 투자가 증가하면서 러시아(6명)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2명) 파키스탄(1명) 등의 변호사도 활동 중이다.

10대 로펌 가운데는 태평양이 가장 많은 국가의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 12개국 변호사가 근무한다. 광장은 10개국 변호사를 고용했고 김앤장과 율촌, 화우가 각각 8개국의 변호사 인력을 확보했다. 김앤장은 서비스 국가를 다양화하는 대신 법률 소비자 수요가 풍부한 미국 변호사를 선호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세종과 지평의 외국 변호사 자격증 종류는 각각 7개와 5개국이었다.

기업 내 외국 변호사도 5000여 명 달해

해외 법률 자문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로펌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활동하는 외국 변호사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외국 변호사가 주축인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은 1999년 설립된 이후 회원이 1300명을 넘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내 외국인 변호사는 5000여 명으로 추정된다”며 “국제 거래와 관련한 계약 업무, 국제 소송 대응과 같은 리스크 관리를 담당한다”고 말했다.

사내 외국 변호사의 업무는 회사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작은 회사의 외국 변호사는 자문 계약(아웃소싱)을 맺은 로펌을 관리하는 게 주요 업무다. 대기업 변호사는 직접 사건을 챙긴다.

실력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사내 외국 변호사가 임원으로 승진해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지재완 삼성전자 부사장은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굵직한 특허 협상과 소송을 주도하며 지식재산권 보호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도형 삼성물산 부사장 또한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상사 비즈니스의 법률적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해 성장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았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