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의 한 교수가 수업시간에 성적 수위가 높은 사진을 쓰고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교수는 사과문을 쓰고 수업에서 물러났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15일 숙대 법대 학생회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민법총칙’ ‘채권총론’ 등의 과목을 담당하는 A교수의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학생들의 항의가 제기됐다. 이에 학생회는2016~2017년 수업자료를 전수조사하고 수강생 제보를 받는 등 사태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A교수의 수업 자료에서 내용과 무관하게 노출이 심한 여성, 잔인하고 불쾌한 사진 자료가 다수 발견됐다. 학생들은 “가슴이 다 드러난 여성 사진이 잇따라 나와 당황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채무관계를 설명하는 단원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여성을 채무자, 남성을 채권자로 설정했다. 학생회는 “모든 채무자를 여성으로 그려놓은 것은 명백한 문제”라며 “의도와 무관하게 남성이 여성보다 중요한 일을 하거나 권력을 쥐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에 ‘여대생이 명품가방을 사기 위해 기둥서방인 조폭에게 돈을 빌린다’는 가정의 문제를 출제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한 문제라는 비판이다.

‘법률행위와 의사표시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못생긴 여성이 애교를 부리며 선배에게 밥을 사달라고 할 때는 안사주지만, 예쁜 여성이 하면 사준다”는 등의 예시를 든 것 역시 반발을 샀다. 학생회는 “사회에서 접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여성혐오적 사고의 전형”이라며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에게까지 이런 이야길 들어야 하나”고 규탄했다.

이에 A교수는 학교 커뮤니티에 “학교에서 맡고 있는 역할에서 사퇴하고 이번 학기 출석수업을 모두 중단한 뒤 대체강사를 투입하겠다”며 “12년간 수업하며 젠더의식이 부족한 발언을 많이 한 것을 깊이 반성하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이같은 사과에도 학생 반응은 차갑다. 개인 차원의 사과가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학교가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여론이 강하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간의 권력구조상 이같은 일은 언제나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발이 커지자 학교 측은 “A교수 건은 사과문과 별개로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이라며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개별사건과 별개로 교원들의 성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학교 관계자는 “대학 구성원들의 젠더 의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선례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