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회전문에 부딪힌 80대 노인이 허벅지 뼈에 금이 가 수술을 받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은 "교통사고처럼 보험사와 얘기하라"는 대응으로 일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오후 12시 41분경 경기도에 사는 81세 신 모 할머니가 서울 송파구에 소재한 A병원 동관 후문으로 들어오다 회전문 모서리에 부딪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피해 할머니는 9명의 사람들과 함께 자동 회전문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이 사람들 가운데 맨 뒤에서 걷고 있었고 앞선 사람들을 따라 문을 빠져나가다 회전문이 할머니의 몸통 오른쪽 부분을 가격해 넘어졌다.

할머니가 회전 구간을 막 빠져나갈 때 쯤 할머니의 보행속도보다 문짝이 빨리 회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당시 CCTV 영상
사고당시 CCTV 영상
사고 회전문은 직경 약 4m에 두 개의 문짝이 I자 형태로 설치돼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구조로 돼 있다. 자동 회전문은 보행자를 감지해 사람이 있을 경우 자동으로 멈추게 돼 있으나 사고 회전문의 경우는 피해 할머니를 충격해 쓰러지게 한 뒤에서야 멈췄다.

이 사고로 신 할머니는 왼쪽 대퇴부가 골절돼 치료 후에도 정상적인 보행이 힘든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었다.

더구나 이 할머니는 1년 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남편을 추억하러 왔다 변을 당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피해 할머니는 사고가 난 뒤 이틀 동안 병원 응급실에 방치되다시피 있다가 수술이 진행됐고 담당 의사는 수술은 잘 됐지만 치료 후 정상적인 보행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였다.

병원 측은 시설물 관리 책임에 대한 사과 없이 "이런 일을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는 것 아니냐. 우리는 해줄 것이 없으니 이후 문제는 병원이 가입한 보험회사와 상의하라"고 통보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피해 할머니 아들과 해당병원 법무팀 관계자의 통화 녹음을 확인한 결과 병원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병원 측이 처리할 일이 아니다. 병원이 시설물 보험에 가입돼 있고 보험사에 접수가 됐으니 (교통사고처럼) 보험 회사와 과실 비율을 따져서 보상을 받으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과할 생각도 없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할 일이 없다. 보험사 결정에 따를 것이다"라고 답했다.

병원 측 관계자는 "우리와 피해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게 보험을 드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피해 할머니 가족은 "사고도 사고지만 병원 측의 '우린 상관없는 일이다. 보험사하고 얘기하라'는 갑질 수준의 대처로 어머니와 가족들의 고통이 크다"면서 "환자 상태가 어떤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이렇게 상처받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편의증진 보장법 시행규칙 제2조에는 병원에 설치된 출입문은 회전문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문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보행이나 거동이 어려운 중증 환자들은 회전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충돌하거나 문짝에 끼이는 사고를 당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더 안전한 형태의 출입문을 함께 설치해 환자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난 아산병원 동관 후문은 출입 통로가 자동 회전문 하나밖에 없었으며 환자나 노인이 이용할 경우 회전문이 아닌 다른 문이 설치된 정문으로 안내하는 직원이나 안내문도 없어 사고 우려가 있었다.

병원에서 회전문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86살 노인이 보행 속도 보다 빠르게 도는 병원 회전문에 부딪혀 골절 등의 상해를 입게 되자 피해자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는 사례가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병원이 다른 형태의 출입문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회전문의 문짝이 장애물을 감지했을 경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즉시 멈추도록 관리해야 했지만 사고 회전문은 병원 출입문으로서 충분한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사고 이후 해당 병원은 자동회전 기능을 없앤 채 회전문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배우 한예슬이 지방종 수술을 받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SNS에 공개하자 병원 측은 빠른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면서 '일반인 차별'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파급력이 큰 유명인과 일반인에 대한 대응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것.

80대 할머니의 가족들도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할 병원에서 활동성이 떨어지는 노약자들에게 유일한 통로로 회전문을 이용하게 하고 치명적인 상해까지 입혔는데 보험사와 얘기하면 끝날 교통사고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