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탄신일'보다 '나신날, 오신날' 어때요?
'탄신일'보다는 '나신날' '오신날'이 더 맛깔스럽다. 어감상으로나 조어법상으로나 그렇다. 쉽고 친근한 표현이 우리말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부처님오신날(22일)을 앞두고 거리에는 벌써 연등이 걸렸다. 이날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는 그동안 석가탄신일이었다. 이를 줄여 석탄일 또는 불탄일이라고도 했다. 달리 초파일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석가탄신일을 명절의 하나로 부르는 이름이다. ‘초팔일(初八日)’에서 음이 변한 말이다. 정부에서 2017년 입법예고를 거쳐 10월10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함으로써 비로소 부처님오신날이 공식 명칭이 됐다. 고유명사화한 말이므로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는 점도 기억해 둬야 한다.

탄신일은 ‘생일+일’ 같은 겹말 표현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탄신일'보다 '나신날, 오신날' 어때요?
불교계에서 이날을 ‘부처님오신날’로 바꿔 쓴 지는 꽤 오래됐다. “1960년대 조계종이 지나치게 민속화된 불탄일에 대한 불교적 의미를 복원하고, 한자어로 돼 있는 불탄일·석탄일을 쉽게 풀이해 사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는 게 불교계의 설명이다(‘한국세시풍속사전’). 여기서 ‘한자어 명칭을 쉽게 풀어 쓰자’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1968년 봉축위원회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쓰기로 결의했다(법보신문 2017년 10월10일자)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딱 반세기 전 일이다. 쉽고 친근한 말, 대중에게 다가가는 말에 눈뜬 당시 불교계의 ‘우리말 순화운동’(?)이 자못 선구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탄신일’은 조어법상으로도 바람직한 말이 아니다. ‘탄신(誕辰)’으로 충분하다. 어른한테는 생일이라 하지 않고 생신(生辰)이라고 한다는 걸 어려서부터 배운다. 그래서 자연스레 “할머니, 오늘 생신이에요”라고 하지, 이를 “생신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탄신일’에선 이게 헷갈리는 모양이다. 신(辰)이나 일(日)이나 모두 ‘때, 날’을 나타내는 말이다. 탄신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말한다. 출생을 높이면 탄생이다. 생일, 즉 출생일을 높이면 탄생일이다. 이를 탄일이라고도 한다. 그 탄일을 다시 높인 게 탄신이다. 굳이 따지자면 생일→생신→탄일(탄생일)→탄신의 순으로 격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탄신일은 마치 생일일, 생신일, 탄일일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색한 표현이다.

친근하고 쉬운말 발굴이 우리말 순화 방향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석가탄신일’과 ‘충무공이순신탄신일’이 표제어로 올라 있다. 이는 오랫동안 이들이 법정용어로 쓰였고, 이미 관용적 표기로 굳은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겹말은 모든 언어에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처갓집, 족발 등 우리말에는 그런 예가 무수히 많다. 다만 그것은 관용적으로 표기가 굳어야 한다. ‘탄신일’이 따로 사전에 없는 것은 바른말도 아니지만 그런 까닭도 있을 것이다.

오는 15일은 누구나 알듯이 스승의 날이다. 이 날은 또 세종대왕 탄생일이기도 하다. 올해가 탄신 621돌이다. 정부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한민족의 큰 스승으로 받들고 기린다는 의미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을 스승의 날로 삼았다. 민간에서는 세종대왕 탄신일을 ‘세종대왕나신날’로도 많이 부른다. 공인된 용어는 아니지만 한글운동단체 등에서는 진작부터 이렇게 쓰고 있다. ‘탄신일’보다는 ‘나신날’ ‘오신날’이 더 맛깔스럽다. 어감상으로나 조어법상으로나 그렇다. 쉽고 친근한 표현이 우리말을 살찌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올해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한글학자 눈뫼 허웅 선생(1918~2004)이 나신 지 100돌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해 한글학회는 5월11일 ‘허웅 선생의 학문’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허웅 선생은 최현배 선생에 이어 한글학회를 이끌면서 고운말, 바른말, 쉬운말을 널리 보급하는 데 애를 쓴 이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세종대왕 탄신일보다는 세종대왕나신날을 더 좋은 말로 보았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