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포괄임금계약의 효력
(대법원 2010년 5월28일 선고, 2008다6052 판결)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현행 근로기준법은 외근과 같은 근무 형태로 인해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업의 시작과 종료를 근로시간으로 계산하고 그에 맞는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업무의 성격이나 근로 형태에 비춰 초과근로가 늘 예상되는 근로자에게 초과근로수당이 포함된 월급을 약정하는 관행이 있어 왔다. 임금 계산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법원 판례도 산업현장의 수요를 감안해 이런 약정의 효력을 인정해왔다. 이를 ‘포괄임금계약(약정)’이라고 한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은 약 40%, 대기업은 약 55%, 전체적으로 약 40%가 넘는 기업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 상 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이 상 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포괄임금계약은 근로시간에 비례해 월급이 정산되는 것이 아니라 초과근로를 전제로 기본급은 물론 초과근로수당을 포함한 월급을 미리 정하는 것이다. 물론 사후에 초과근로의 많고 적음을 일일이 계산해 추가수당을 정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0년 5월28일 선고한 ‘2008다6052 판결’을 통해 이런 포괄임금계약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 사건은 군인을 위한 복지지원단에서 근무하는 민간인 근무원들의 포괄임금약정에 대한 다툼이다. 복지지원단은 체력단련장 내 식당(골프장 클럽하우스와 그늘집) 근무원들의 초과근로에 대해 시간 외 근무수당, 특별수당, 봉사료 명목의 초과근로수당을 등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급해왔다. 그러다가 봉사료 명목의 수당 지급이 중단되자 근무원들은 실제 연장근로한 수당을 산정해 차액에 해당하는 초과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사용자는 여러 명목의 초과근로수당을 포괄해 지급해왔으므로 추가지급 청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약정효력 인정” vs “근로자 불이익 없어야”

1심에서는 종전 판례와 같이 초과근로가 예상되는 근무원들에 대한 포괄임금계약 관행의 효력을 인정해 추가지급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의 원심인 2심에서는 “원고인 근무원들이 지급받은 초과근로수당이 처음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없고 제반 사정에 비춰서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됐지만, 수당 중 일부가 중단된 특정일부터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현저히 위반돼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되므로 그때부터 포괄임금계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상고심인 대법원은 “포괄임금이 약정된 경우 그 포괄임금에 포함된 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때에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해 무효라 할 것이고, 사용자는 그 미달되는 법정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한 원심을 지지했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근로시간 산정 가능 땐 포괄임금제 무효"… 남용 방지로 충분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포괄임금제 방식의 약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지급 원칙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 형태를 고려하고 사용자의 임금 계산 편의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요건 하에서 그 유효성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제 근로한 시간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법정수당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포괄임금계약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를 위반하는 이상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포괄임금계약의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 대법원 판결은 포괄임금계약에 대한 권리 남용 방지 입장으로 강하게 선회한 것으로 판단됐고 학계에서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이후 대법원 후속 판결에서도 같은 법리의 설시(說示)가 이어졌고, 이 판결은 사실상 판례 법리로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근무시간에 맞게 임금 지급해야

애초에 포괄임금계약은 노동관계법상 근거 규정이 전혀 없고 판례를 통해 허용돼 왔다. 그간 대법원은 포괄임금계약의 필요성에 대해 근로 형태와 업무의 성질을 고려하고 임금 계산의 편의와 근로자의 근무의욕 고취 취지를 강조했다. 이처럼 이 제도는 산업현장에서 근로기준법에 기초한 임금 지급 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관행을 존중해 허용해온 사정도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제 근로에 기반해 만들어진 오래된 근로기준법상 복잡하고도 경직적인 임금 계산에 유연성을 부여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이 제도는 기업으로 하여금 포괄임금계약을 명분으로 장시간 근로 등 근로조건 위반을 유도할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포괄임금계약의 유효성이나 적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포괄임금계약의 남용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포괄임금계약을 한 근로자가 포괄된 초과근로수당보다 많은 시간을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수당 지급 청구를 어렵게 하는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다면 번거롭고 어렵더라도 실제 근로한 시간에 맞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포괄임금계약이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정부 들어 ‘포괄임금제 남용 제한’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까지 나온 상태다.

포괄임금제와 장시간 근로 인과관계 없어

이 판결과 이를 지지하는 후속 판결들은 포괄임금계약이 산업현장에서 무분별하게 남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기능을 할 게 틀림없다. 그러나 포괄임금계약을 금지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거나 산업현장의 포괄임금계약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논리로까지 발전할 이유는 없다. 특히 포괄임금계약을 금지하는 것이 장시간 근로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주장될 수 있기는 하지만 포괄임금계약과 장시간 근로의 인과관계가 입증되거나 그런 결론을 얻은 연구는 아직 없다.

또 포괄임금계약은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까지 동일하게 취급할 이유는 없다. 근로시간 산정 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 또는 근로시간 산정은 가능하지만 현장 여건상 근로시간 산정에 과도한 투입이 요구될 경우에는 근로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할 수 있는 포괄임금계약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 억제보단 유연한 근로시간제 정착 더 중요

포괄임금계약은 노동관계법령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산업현장의 필요에 의해 근로자 보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사법부가 사적자치를 허용해온 것이다. 다만 이 제도는 실제 근로시간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 산정이 일치되지 않는 등 남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포괄임금계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포괄임금제는 산업현장의 필요에 의해 노사가 자율적으로 만든 제도이기 때문이다. 자연 발생적으로 등장한 관행이나 제도를 남용 가능성을 이유로 금지할 필요까지는 없다. 남용될 소지가 있다면 관리 감독을 통해 저지하면 된다.

포괄임금계약이 장시간 근로의 원인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따라서 포괄임금계약은 적용을 억제하기보다는 남용 방지에 초점을 둬야 한다.

현행 근로시간제도는 19세기 공장 근로자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 제도는 화이트칼라 근로의 성질이나 근로의 양이 아니라 질이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포괄임금계약의 남용을 방지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근로시간과 임금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유연한 근로시간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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