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특강…"평창서 만난 김영철, 이정미 전 소장 안부 물어"
"정치의 장에서 해결할 문제가 사법부로 오는 것 상당히 문제"
이진성 헌재소장 "北에도 법치주의 실현될 것… 비핵화가 바탕"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2일 "현 단계에서 아주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먼 훗날일지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바탕으로 군주국가와 비슷한 형태의 북한에도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시대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헌법재판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4·27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양측 지도자가 만나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하며, 폐막식 당시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 사이에 앉아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이 소장은 "김 부위원장에게 내가 헌재소장이라고 밝히자, 첫 질문이 '탄핵 재판할 때 여자 재판관(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금 뭐하느냐'였다"며 "그분들도 TV로 봐서 다 알고 있던 것"이라고 전했다.

또 김 부위원장에게 북한도 컬링을 하느냐고 묻자 김 부위원장은 "자기들이 (참여하는) 동계 종목이 다 초창기 단계라서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컬링도 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소장이 하늘에서 펼쳐진 드론 쇼를 보고 있지 않자 브룩스 사령관이 하늘을 보라고 알려줬고, 이 소장은 이를 김 부위원장에게 알려 "간접적으로 그때 북미대화를 실현했다"고 농을 던져 객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헌재에서 소수의견을 많이 내온 이 소장은 이날 특강에서도 소수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 환경이 바뀌면 소수의견이 언제든 다수 의견이 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민주사회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2013년 헌재가 선거권자 연령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한 선거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자신이 냈던 소수의견을 소개하며 "어릴 때부터 타협과 갈등조정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하자는 의미에서 낮추자는 의견을 냈는데 아직도 안 낮춰지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정치적인 이슈가 법원이나 헌재로 넘어오는 사례를 놓고 "정치의 장에서 타협이나 조정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사법부로 오는 것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그것을 마다치 않고 헌법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서 나오는 '헌법재판관이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는 비판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헌법재판관이 선거로 정해진다면 지지기반을 뛰어넘는 독립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재판관에게는 민주적 정당성이 아닌 헌법적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헌재나 사법부의 판단은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자유권의 확대에 중점을 두어왔는데 앞으로는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 계층 간 대립·갈등을 조정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며 "자유권 확대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해석하고, 그런 방향으로 개정되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