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韓기업, 중동의 법원 전문가제도 잘 몰라 손해보기 일쑤"
“중동지역 재판에서는 법원이 사전에 지정한 전문가만 판결에 영향을 주는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 상당수가 이런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있어요.”

중동 최대 로펌인 알타미미의 필립스 코치스 파트너변호사(사진)는 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법시스템 차이 때문에 발주처와의 분쟁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본사가 있는 알타미미는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중동 9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변호사는 모두 405명으로 100여 명 수준인 2위권 로펌과 격차가 크다. 코치스 변호사는 미국 미시간주(州) 변호사 출신으로 알타미미 쿠웨이트지사 대표도 겸하고 있다.

코치스 변호사는 “중동의 판사들은 복잡한 회계지식이나 고난도 기술 이해력 등이 필요한 사건은 법원이 관리하는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한다”며 “전문가를 잘 못 배당받으면 쉽게 이길 것 같은 재판도 난항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동 재판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전에 민간 전문가를 동원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단 사건을 배당받은 법원의 전문가는 설사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라고 해도 판사에게 분석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재판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민간 업체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법원 소속 전문가에게 먼저 전달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중동 사법체계 이해도가 낮고 민간 보고서 작성 비용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수세에 몰리는 사례가 많다. 코치스 변호사는 “중동에 진출한 회사 가운데 일부는 한국 본사에 민간 보고서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용지출 허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없는 제도이다 보니 괜히 ‘헛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는 얘기다.

코치스 변호사는 한국 기업이 중동의 각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나 중재에 너무 소극적으로 접근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그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지만 한국 기업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한다”며 “한국 기업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무조건 참고 넘어간다는 인식이 퍼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동 국가들은 ‘석유시대의 종말’을 우려해 앞다퉈 산업구조 개편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외국 자본과 기술 유치를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이 자신감을 갖고 권리를 찾을 여건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소송이나 중재를 하는 과정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돼 추가 수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는 점을 한국 기업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게 코치스 변호사의 조언이다.

코치스 변호사는 쿠웨이트 시장에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가 많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는 “쿠웨이트는 중동의 그 어느 나라보다 외국 민간기업을 통한 인프라 시설 개발에 적극적”이라며 “지금은 일본 기업이 주도적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한국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