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A사 사장은 최근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한구석에서 눈물을 훔쳤다. 판사와 민원인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관리위원 태도에 모욕감을 느껴서다. 두세 시간을 기다려 만난 관리위원은 시종일관 고압적이었다. A사 사장은 “말끝에 ‘요’를 붙여주기는 했지만 반말이나 다름없는 말투였다”며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미칠 노릇인데 회생계획안을 이따위로 낼 거냐는 얘기를 들으니 참 서러웠다”고 말했다. 정작 만나보고자 했던 판사는 얼굴도 못 봤다.
판사 접촉 막고 툭하면 호통… 관리위원 甲질에 기업회생시장 '흔들'
전국 유일의 회생·파산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이 회생과정 전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관리위원들의 부적절한 태도 탓에 기업들로부터 오히려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위원들이 민원인을 장시간 기다리게 하거나 중간에서 판사와의 접촉을 가로막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저해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지난해 20%가량 급감한 데서 시장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

특정 회생 방식을 강요한다는 불만도 만만찮다. 관리위원들이 퇴직 후 회생 기업의 대표(관리인)나 구조조정담당임원(CRO) 등 ‘낙하산’으로 재취업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판사보다 관리위원 눈치보는 기업들

회생 신청 후 일반적으로 △채권신고 △채권액 확정(시부인) △회생가치 산정 △회생계획안 마련 △관계인 집회 등의 절차를 거친다. 복잡한 과정에서 챙겨야 할 서류만 수백 장이 넘는다. 따라서 판사들은 관련 경험이 많은 관리위원의 노하우에 상당수 의존하는 편이다.

서울회생법원은 9명에 달하는 관리위원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위임돼 있어, 회생업무가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관리위원 한 명이 보통 40~50개 기업의 회생을 맡고 있다. 은행 퇴직자 출신의 50~60대가 대부분이다. 3년 계약직 공무원으로 큰 변수가 없으면 한 번 이상 연임한다. 한 번만 연임해도 6년을 회생·파산 분야에 종사하게 된다. 반면 회생법원 판사의 평균 재임 기간은 2~3년 정도다. 회생업무의 실권을 관리위원들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공공연한 이유다.

대기업 B사 사장은 “일부 젊은 판사들은 나이도 많고 오래 근무한 관리위원의 눈치를 본다”고 전했다. 그는 “심지어 판사가 허가한 긴급 현안도 관리위원들이 미적대면서 몇 달째 처리하지 않아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관리위원들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 기업인들과 직접 대면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회생·파생 사건을 처리하는 전국 14개 지방법원 가운데 관리위원의 권한이 서울회생법원처럼 많은 곳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회생법원에서는 자금집행 등 회생 관련 일상업무가 관리위원 선에서 처리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판사가 관리위원에게 맡겨 둔 업무량은 서울회생법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30명의 판사로는 수백 건의 회생 사건을 처리하기가 어려워 불가피하게 관리위원에게 상당한 의사결정권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실적 쌓기 차원에서 특정 회생 방식 강요”

서울회생법원의 전신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다. 기업회생업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해 3월 독립했다. 출범 초기에는 ‘P플랜(초단기 법정관리)’이나 ‘스토킹 호스(가계약 후 경쟁입찰)’ 등 새로운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면서 기업들의 기대를 높였다. P플랜은 2~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채권자 주도로 법정관리를 하면서 채무를 정리해주는 회생 방식이다. 스토킹 호스는 회생 대상 기업을 사고 싶어하는 예비인수자를 미리 구해놓은 상태에서 경쟁입찰을 부쳐 신규 자금을 공급받는 제도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사 사정과 맞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스토킹 호스 방식을 밀어붙이기도 한다”며 “대외적으로 새로운 제도 도입 실적을 내세우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관리위원들이 기존 관행을 고집하면서 시장흐름을 좇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정관리 중인 대기업 B사 사장은 “여러 아이디어를 회생계획안에 담아봤는데 관리위원이 ‘관례와 다르니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윽박지르더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최근 회생기업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지고 사모펀드(PEF)가 중도에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이런 ‘꽉 막힌 사고방식’ 탓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올 들어 성동조선해양과 미주제강이 서울회생법원을 피해 각각 창원지법과 수원지법에서 회생을 진행한 것도 이런 분위기가 작용했다. 회생전문법원의 위상을 쌓아가기는커녕 ‘회생신청 기피 법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직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부장판사는 “관리위원이 판사에게 2개월간 보고도 안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경영한 사례도 봤다”며 “관리위원의 ‘갑질’을 성토하는 민원이 많아 시스템을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회생기업 임원으로 가는 관리위원들

일각에서는 관리위원들의 관심이 ‘낙하산 자리’에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퇴직한 관리위원이 법정관리 기업 임원으로 재취업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한 현직 판사는 “관리위원은 계약직이어서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서울회생법원 관리위원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서울회생법원은 2016년 5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 감사에 관리위원 출신인 한모씨를 앉혔다. 법원 관계자는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이 제대로 된 감사후보를 내지 못해 관리위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많다. 법정관리 중인 삼환기업에도 최근 구조조정담당임원으로 서울회생법원 관리위원 출신이 선임됐다. 제주컨트리클럽 골프장은 관리위원 출신이 대표를 맡고 있다. 재취업 논란에 대해 서울회생법원은 “시장에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회생을 도울 전문가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대부분 공공기관이 퇴직자의 민간회사 취업을 제한하는데 서울회생법원만 예외”라며 “심판을 맡다 선수로 뛰면 이해관계 상충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