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를 압박해 특정 보수단체에 69억원 상당을 지원하게 한 혐의를 받아온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 20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구속 만료 시점(오는 5월4일) 도래를 이유로 허 전 행정관이 신청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지난 17일 재판에서 “허 전 행정관 측 보석신청이 한 차례 기각됐지만 사건 내용이 광범위하고 재판도 어느 정도 진척돼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허 전 행정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에 대해 추가로 기소하겠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검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에 특정 단체를 지원하도록 지시하고 친정부 시위 등을 독려했다는 일명 ‘화이트리스트’ 사건의 주범으로 허 전 행정관을 지목해 구속기소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국가공무원법 위반, 강요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다. 검찰은 허 전 행정관의 공소장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박준우·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공범으로 적시하며 허 전 행정관 구속을 계기로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증거 부족 등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허 전 행정관의 구속기간(6개월)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허 전 행정관 재판을 김 전 실장 등의 사건과 병합해 처리하기로 했다. 1심 선고 시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된다.

허 전 행정관은 자신이 청와대 말단 직원에 불과하고 전경련이 관할 기관이 아니어서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전경련을 협박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강요죄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형사사건은 불구속 수사가 원칙인데 구속부터 해놓고 수사하다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