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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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 영업4그룹에 근무하는 김형돈 씨는 대학 졸업 후 5년간 전기공학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그러다 최근 인사 발령으로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라 모든 게 낯설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김 차장은 고민 끝에 작년부터 핀란드 알토대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내 EMBA 과정에 진학했다. 국내 다른 대학의 MBA와 달리 주말에만 수업을 진행해 회사 업무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마케팅 업무를 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인 지식을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직장인에게 MBA(경영학석사) 학위는 ‘신분 상승’에 필요한 보증수표였다. 미국 유럽 등 해외 유수 대학의 MBA만 있으면 ‘몸값’을 높여 이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최근 들어 MBA의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기업들도 과거처럼 무턱대고 MBA 출신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직장인들은 국내 대학에서 운영하는 MBA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학비, 비즈니스 인맥 구축,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 획득 등을 놓고 따져봤을 때 국내 대학 MBA의 ‘가성비’가 해외 MBA보다 더 좋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대학들도 직장인의 이 같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직장인을 겨냥한 주말 강좌를 확대하고, 시대 흐름에 맞춰 커리큘럼도 개편하고 있다.

한양대는 MBA 과정을 미래 최고경영자(CEO)를 양성하는 ‘한양 MBA’, 산업별로 특화된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페셔널 MBA’, 가업(家業) 승계 대상자를 타깃으로 한 ‘인터내셔널 MBA’ 등 세 가지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이 중 프로페셔널 MBA 과정에선 △의료경영 △금융투자 △디지털비즈니스 △문화예술경영 △스포츠비즈니스 등 총 5개 트랙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인터내셔널 MBA 과정을 졸업한 임정구 성모산업 기술지원부장은 “MBA 과정을 이수하면서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다”며 “가업승계를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많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알토대의 EMBA 과정은 모든 강좌를 주말에 진행하고, 영어·한국어 혼용 강좌와 100% 영어강좌를 병행해 직장인에게 인기가 높다. 최근 창업과 디자인에 대한 직장인들의 높은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타트업 사우나’ ‘디자인 팩토리’ 등 창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교육과정에 도입하기도 했다.

건국대는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전통적인 경영학 분야에 집중하는 ‘건국 MBA’, 최근 주목받는 전문 분야를 다루는 ‘파이어니어 MBA’, 문화·예술 분야에 특화된 경영인을 양성하는 ‘아트&컬처 MBA’ 등으로 재편했다. 파이어니어 MBA 프로그램에선 빅데이터, 핀테크, 기술경영 등을 집중 교육한다.

국내 대학들은 해외 유수의 대학과 연계한 ‘복수 학위제도’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MBA 과정을 이수하면 해당 대학뿐 아니라 해외 대학의 MBA 학위도 동시에 수여하는 방식이다. 고려대의 ‘에스큐브아시아 MBA’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은 고려대가 중국 푸단대, 싱가포르국립대 등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1학기씩 각 나라를 돌며 그 지역 대학에서 공부한다. 졸업생들은 고려대 MBA 학위와 함께 푸단대와 싱가포르국립대 중 원하는 학교 한 곳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지난해 에스큐브아시아 MBA 과정을 졸업한 김기은 메디톡스 과장은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바이오 업무를 해보고 싶어 지원했다”며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핵심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고 비즈니스에 필요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