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숨기려 피해자 명의 휴직계 제출…가족에겐 생활비 송금

십년지기 동료를 살해하고 시신을 소각한 환경미화원은 끝까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발뺌했다.

검찰이 16일 강도살인과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한 전주 환경미화원 이모(49)씨와 피해자인 A(58)씨의 악연은 10여 년 전 시작됐다.
십년지기 동료 살해·시신 소각 환경미화원… '우발적 범행' 발뺌
같은 근무지에서 일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지면서 친해지기 시작했다.

A씨는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이씨와 유난히 잘 지냈다고 한다.

이혼 후 외로운 가족사 등 속내를 털어놨고 돈까지 빌려줬다.

주식투자 실패로 5억원가량의 빚이 있던 이씨는 A씨로부터 1억5천만원을 빌렸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채무 변제를 미루던 이씨와 빚까지 져가며 돈을 빌려줬던 A씨는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씨는 지난해 4월 4일 오후 자신의 원룸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A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신용카드 11개와 통장 13개,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그는 범행 다음 날인 4월 5일 오후 11시께 A씨 시신을 100ℓ 종량제 봉투와 검정봉투로 포장·봉인한 뒤 평소 자신이 수거하는 쓰레기배출장에 버렸다.

이튿날에는 시신을 직접 수거해 소각장에 보내 소각까지 했다.

이씨의 연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십년지기 동료 살해·시신 소각 환경미화원… '우발적 범행' 발뺌
완벽한 범행 은폐를 위해 이씨는 A씨 이름이 적힌 휴직계와 진단서를 구청에 팩스로 제출했다.

진단서가 첨부된 휴직계를 받은 구청은 의심 없이 5월부터 A씨가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씨는 이 와중에 A씨의 휴직급여를 타려고 구청에 연락해 수령 계좌를 변경하기도 했다.

가족과 거의 왕래하지 않고 대인관계가 좁은 A씨를 살해해도 찾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이씨는 1년 가까이 치밀한 연극을 이어갔다.

다음 목표는 피해자 가족이었다.

이씨는 생전 A씨가 "이혼한 뒤 딸들에게 가끔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A씨 휴대전화로 딸들에게 "아빠는 잘 있다.", "생활비는 있니?"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받은 A씨 딸들은 아버지의 살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씨는 A씨 딸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생활비를 송금했다.

그러면서 슬쩍 A씨의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영화처럼 이씨는 A씨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목소리를 변조해 전화를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A씨 아버지가 지난해 12월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찰은 당시 일반 실종사건으로 판단했지만, 이씨가 인천 술집에서 사용한 카드사용 명세가 발견되면서 강력사건으로 전환됐다.

경찰은 이씨 원룸을 압수수색해 A씨 신분증과 위조 진단서, 혈흔이 묻은 가방 등 증거를 찾아냈다.

이씨의 추악한 가면이 사건 발생 11개월 만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이씨는 범행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A씨 명의로 저축은행 등에서 5천300만원을 대출받는 등 3억원가량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범행 직후 A씨의 신용카드로 6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샀고, 11개월간 1억6천만원가량을 채무 돌려막기, 유흥비 등으로 썼다.

이씨는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겁을 주려고 A씨의 목을 졸랐을 뿐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며 "살해 직후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피해자의 돈을 썼을 뿐 금전 문제로 갈등은 전혀 없었다"고 끝까지 살인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범행 당시 두 사람은 금전적 갈등이 극에 달했었고, 이씨가 범행 직후 A씨의 신용카드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점 등을 확인,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