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관련 결정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위헌 판단을 내려 ‘좌클릭’ 중인 헌재의 현주소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좌클릭' 감지되는 헌재의 국보법 심판
이번 헌법소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 및 자격정지 1년6개월이 확정된 진모씨가 제기했다.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사람에게 형벌과 별도로 자격 정지를 동시에 부과하는 것이 위헌인지를 가려달라는 요청이었지만 헌재는 이적표현물 소지죄 자체를 판단했다. 소지죄를 두고 헌재는 그간 일곱 번의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재판관 3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이번 결정은 합헌 4명, 위헌 5명 의견으로 갈렸다.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 중다수결인 탓에 합헌 결정은 유지됐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정족수 6명에서 1명이 모자란 것이다. 김창종 재판관 등 4명이 “이적표현물을 소지하는 행위가 지니는 위험성이 이를 반포하는 행위에 비해 결코 적다고 보기 어렵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반면 이진성 헌재소장, 김이수·강일원 재판관과 문재인 정부에서 신규 선임된 이선애·유남석 재판관 등 5명은 위헌 쪽에 섰다. 이적표현물 소지 그 자체로는 대외적 전파 가능성을 수반하지 않아 국가 존립과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또 “표현물을 소지한 사람이 이를 유포·전파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막연하고 잠재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소지 행위를 미리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한 처벌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대한 처벌이라고도 했다.

검사장 출신의 공안통 변호사는 “유포죄는 증거로 증명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실무적으로는 소지죄가 중요한 죄목”이라며 “소지죄가 사라지면 사실상 이적표현물 관련 국가보안법은 없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관은 올해 9월 5명, 내년 상반기 2명이 교체된다. 법조계의 한 고위인사는 “국가보안법을 포함해 내년 하반기부터 헌재가 내놓은 결정은 기존과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