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능최저기준 폐지 반대 및 정시 확대' 요구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능최저기준 폐지 반대 및 정시 확대' 요구 집회가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대입정책 혼선을 빚은 교육부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 대학의 비판까지 받는다. 잘못된 접근방식과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자초한 ‘사면초가’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교육부가 그간의 배경과 앞으로의 방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접근방식도 잘못, 내용도 '오락가락'

5일 교육계 의견을 종합하면 이번 사태의 포문을 연 것은 수시전형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다. 교육부가 대학들에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세부사항을 안내하면서 이를 권고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학의 돈줄을 쥐고 압박하는 ‘방식’, 주요 대입사항을 급박하게 바꾼 ‘시기’가 그것이다.

김상곤 장관 취임 후 교육부는 재정지원사업에 대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어긴 셈이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앞서 교육부는 주요 대입 변화사항을 사전에 알리는 제도를 마련했었다. 이른바 ‘3년 예고제’다. 입시안정성을 확보해 학생들에게 대입 준비시간을 주기로 한 정책 취지에 어긋난다는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메시지의 일관성은 있었다.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수시는 수시답게, 정시는 정시답게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부 위주인 수시전형에서 수능 성적을 빼 수험생 부담을 덜겠다는 얘기였다. 10여년간 지속된 수시 확대, 정시 축소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박춘란 차관이 주요 대학에 전화해 정시 확대 검토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교육부가 공식 절차를 건너뛴 채 대학을 압박했다.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한 처사로 받아들여졌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아무리 그래도 대학을 이렇게 다뤄선 안 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최소한의 정책적 일관성마저 잃었다는 데 있다. 수능최저기준 폐지를 권고한 교육부가 겨우 며칠 만에 정반대 메시지로 읽히는 정시 확대를 요구해왔다. 전방위 불만 여론이 폭발한 지점이다.

◆ '김상곤 패싱' 아니라지만…대체 왜?

왜 혼선이 불 보듯 뻔한 메시지를, 이토록 비정상적 방식으로 발신한 것일까. 미스터리다. 일단 교육부는 “여론을 감안한 비상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시 확대는 수능 절대평가 및 자격고사화 등을 강조해온 김 장관의 소신과 결이 다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한 여당과의 반목설이 제기된 건 그래서다. 때마침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폐지하고 수능과 내신 위주 전형으로 단순화하자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게다가 박 차관이 전면에 나서면서 ‘김상곤 패싱’ 의혹까지 나왔다.
지난달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상곤 장관과 박춘란 차관. /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상곤 장관과 박춘란 차관. / 사진=연합뉴스
물론 교육부는 청와대·여당 개입설을 부인했다. 이진석 고등교육정책실장은 “장·차관도 함께 관련 회의를 해오면서 ‘정시 비중이 너무 낮다’는 부정적 의견이 있다는 점을 공유해왔다. 패싱 논란은 사실무근”이라며 “실장보다는 차관이 대학에 의견을 전달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라 여겼을 뿐”이라고 했다.

교육부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굳이 비공식 루트로 몇몇 대학에만 지침을 전달한 배경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재정지원사업 연계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는 관계자 답변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편법을 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 지방대 입학처장은 “전체 대학과의 논의 없이 서울의 몇몇 대학만 다잡으면 되는 것인가. 교육부가 문제를 키웠다”고 짚었다. 수도권 대학 입학처장도 “대입은 대학간에도 이견이 크다. 상위권대는 ‘수능 변별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지방대는 서울 위주 시각이라 비판한다”면서 “이견을 조정해야 할 교육부가 도리어 대학간 이견을 조장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 학부모 "정시↑" 교사 "수능 회귀 X"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가장 울고 싶은 건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학부모다. 재수생 자녀를 둔 학부모 신미선씨는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정책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올 8월 있을 대입제도 개편에서 수능 절대평가로 바뀌면 수능최저기준 폐지 여부나 정시 확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유다. “학종뿐 아니라 정시나 논술로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학생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교사들 또한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약 10년간 학교 교육과정을 바꾸고 대입도 학교활동 중심 평가를 왔는데 퇴행해선 안 된다는 것. 정시 확대 움직임에 대해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학부모는 자녀의 유·불리, 사교육 업체는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게 마련”이라며 “교육적 견지에서는 정시를 늘릴 게 아니라 학생부 기재항목 간소화, 교사들의 학생부 공동기재 등 신뢰도를 높여나가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교조도 이날 ‘대입제도 개편에 대한 교육부의 밀실행정과 꼼수정책을 비판한다’ 제하 논평에서 “교육부는 종합적 전망 제시나 앞뒤 맥락에 대한 설명도 없이 수능최저기준 폐지, 정시 확대를 요구해 혼란과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면서 “정시 확대는 정부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중요한 정책 기조를 자의적으로 바꾸는 것은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수능 절대평가 전환,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 적용, 고교학점제 도입 등 김상곤 교육부의 정책들은 정시 확대와는 연동되기 어렵다. 특히 수능 절대평가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이들 정책과는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전반적 정책 기조가 바뀐 것인지, 2022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편과도 직접 연계되는 것인지, 이제라도 교육부가 솔직하게 답해야 할 때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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