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근로시간 단축(주당 68시간→52시간) 시행을 앞두고 기업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퇴근시간이 되면 사무실 전등을 전부 끄고, 업무용 컴퓨터 전원을 내리는 곳이 늘었다. 주말 근무를 피하기 위해 월요일 하던 회의를 다른 요일로 옮기는 곳도 많아지는 분위기다. 직원들이 개인 선호에 맞춰 근무 시간대와 휴가 일정을 조정하는 회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과장 이대리들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이런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들의 일상을 들어봤다.
[김과장&이대리] 근로시간 단축 앞둔 기업들 신풍속도
줄어드는 월요일 부서·임원회의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는 손 대리는 두 달 전부터 요가학원에 다니고 있다. 올초 회사가 오후 6시 ‘칼퇴’ 권장에 적극 나서면서 저녁시간이 여유로워진 덕분이다. 이 회사는 매주 금요일 오후 6시가 되면 사무실 전등을 모두 끈다. 온라인 업무 공간인 회사 인트라넷은 업무시간 외에는 아예 접속할 수 없게 바꿨다. 변화 초반엔 다들 야근 없는 생활을 어색해했다. 남은 업무가 눈에 밟힌다며 집으로 일감을 가져가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금요일뿐 아니라 다른 요일도 칼퇴가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그는 “야근 관행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회사 문화가 바뀌는 걸 보고 다들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김과장&이대리] 근로시간 단축 앞둔 기업들 신풍속도
콘텐츠 기업에서 일하는 장 과장은 업무 효율이 확 높아졌다. 퇴근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셧다운제’ 덕분이다. 일정 시간 이후 잔업하는 이들은 인사팀에 명단을 넘겨야 한다. 이전엔 ‘일이 남으면 야근하면 된다’는 생각에 오전 시간을 안일하게 보내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장 과장은 “가용 업무시간이 줄어든 만큼 제대로 집중해 정해진 업무를 끝내려고 노력한다”며 “이전보다 일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한 종합상사는 매주 주요 안건을 논의하는 회의 날짜를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꿨다. 주말만은 일 걱정 없이 편하게 쉬자는 취지다. 이 덕분에 주말 근무 신청자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 회사에 다니는 최 과장은 “주말에 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가족과 온전한 주말을 보낼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정해 활용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직장인들의 시간 씀씀이도 여유로워지는 분위기다. 직장생활 8년차인 정 과장은 외국계 금융사에 이직한 뒤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처음엔 오전 10시에 느지막이 출근하면 혹시나 상사에게 밉보일까 걱정했다.

하지만 막내부터 팀장까지 개인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 일정을 조정하는 모습에 마음을 바꿨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줘야 하는 직원이나 임신부 등이 유연근무제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어요.”

자신의 휴가를 직접 승인하는 자율휴가제를 운영하는 곳도 생겼다. 평일 연차를 쓰기 위해 집안 제사나 병원 예약 등 온갖 변명을 늘어놓던 것도 이젠 옛말이다. 특별한 업무 일정이 없으면 바로 전날이라도 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정유회사에 다니는 이 대리는 이 제도를 이용해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가까운 해외여행을 종종 즐기고 있다. “주말을 끼고 하루 이틀 연차를 써 단기 여행을 자주 갑니다. 예전 같으면 언감생심이던 ‘땡처리’ 항공권을 사서 며칠 안에 떠나기도 하죠. 여름·겨울 휴가를 기다릴 것 없이 수시로 재충전하다 보니 예전보다 일에 대한 만족도도 커졌습니다.”

카페 야근족도 등장… “딴 세상 얘기죠”

근무 시간 단축과 워라밸이 딴 세상 얘기인 직장인도 많다. 대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윤 과장은 출근할 때 개인 노트북 컴퓨터를 챙긴다. 오후 6시 회사 컴퓨터가 꺼진 후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회사가 셧다운제를 도입했지만 근무시간만 줄고 업무량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저녁마다 회사 근처 카페를 전전하며 불편한 야근을 하고 있다. 그는 “왜 멀쩡한 회사를 놔두고 매일 저녁마다 카페 빈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워라밸은커녕 생활이 더 불편해졌다”고 토로했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근무하는 안 대리는 최근 1주일간 독박 야근에 시달렸다. 3개월간 프로젝트를 함께 해온 팀원이 막바지 단계에 갑자기 휴가를 떠나면서다. 안 대리가 “혼자선 끝내기 어려운 일이라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그 팀원은 “이미 비행기 표를 샀다. 이해해달라”며 훌쩍 출국해버렸다. 안 대리는 “요즘은 싼 비행기 표를 찾으면 앞뒤 따지지 않고 휴가 일정을 팀에 통보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꼰대’ 취급을 받을까봐 뭐라 말도 못 하겠더라고요. 제 워라밸만 아주 엉망이 됐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과장 이대리들에게도 워라밸은 남의 나라 얘기다. 소프트웨어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채 대리는 “회사가 야근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해 잔업을 앞둔 이들에게 퇴근 카드를 미리 찍고 근무하도록 한다”며 “주 52시간으로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또 기상천외한 꼼수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꼼수를 신고하면 회사는 벌금을 내는 데 그치지만 해당 직원은 퇴사를 각오해야 할 거예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시간은 생기겠지만 저녁 먹을 돈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는 직장인도 많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금형업체에 다니는 성 과장은 “우리 회사에서 잔업은 업무량이 많아서 한다기보다는 근로자들이 돈을 더 벌고 싶어 하는 것”이라며 “회사 수주 물량이 조금이라도 감소하면 직원들은 잔업 수당이 줄어들 걱정부터 하는 판인데 근무시간을 법으로 제한하겠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